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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의 수업/작가, 작품론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한 달

by 拏俐♡나리 2010. 6. 8.

“히스토리와 마이 스토리 합친 얘기 아하! 그렇구나 무릎치게 하고 싶어”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태고의 바다를 만났습니다. 나물 바구니에서 격물치지(格物致知) 사상을 깨달았고,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에 숨은그림찾기처럼 간직된 한국인의 욕망의 공간을 읽었습니다. 지난달 6일 연재를 시작한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가 11일 26회로 ‘첫 장’을 마쳤습니다. 이제 겨우 문턱 앞에 서니 앞으로 펼쳐질 한국인 이야기가 더 궁금해집니다. 희수(喜壽·77세)의 나이에도 매일 원고를 10장씩 쓰고 있는 그를 7일 오후 본사 14층 사무실에서 2시간 동안 인터뷰했습니다.

■ 이어령은 누구

1934년 충남 아산 출생. 서울대 문리대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이화여대 문리대 교수. 1990년 초대 문화부 장관,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등 역임. 현재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이자 본사 상임고문. 대표 저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젊음의 탄생』.


한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숨쉬고 부르짖는 생명의 역사 쓰고 싶어

#1. 나는 평생 고독한 사람


-얼마 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선생을 가장 존경한다고 했고, 저널리스트 오효진씨는 ‘5000년 역사상 이렇게 괴물 같은 창조적 인물은 없었다’고 했는데, 천재라는 칭송을 들으면 기분이 어떠십니까.

“고맙고 과분합니다. 하지만 제가 받고 싶었던 것은 찬사보다는 감동이었지요. 군대가 사기를 먹고 산다고 하듯이 글 쓰는 사람은 감동을 먹고 삽니다. 저에게 독자란 함께 공감을 나누는 동반자지요. ‘감동’을 한자로 써보세요. 사람은 느껴야 (感) 움직(動)입니다. 그 에너지가 부족해서 저는 언제나 배가 고프고 그래서 또 이렇게 글을 씁니다.

-한 인터뷰에서 평생 왕따로 살았다고 고백하셨죠. 또 ‘이어령을 존경하는 사람은 많지만 좋아하는 이는 드물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한평생 고독하신 겁니까.

“맞아요. 나는 친구나 동료도 별로 없고 사교성이 부족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외로웠거든. 여섯 살 때쯤 아무도 없는 한여름에 햇빛이 쏟아지는 보리밭에서 혼자 굴렁쇠를 굴리고 가다가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어요. 나중에 그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를 경험한 것인 줄 알게 됐죠.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혼자니까, 또 아무것도 빛나는 것이 없으니까 친구를 만들고, 죽자 사자 연애를 하고, 어느 조직에 들어가서 충성하고 그럴 수 없었던 것이지요.”

-절대고독을 예닐곱 살 때 느끼셨다면 조숙하셨네요.

“오히려 철이 안 들었던 것이지요. 철이 일찍 들었더라면 권력이나 돈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그런 터무니없는 문제로 고민하지 않았을 겁니다. 피란 시절에 2~3일 굶은 적이 있었는데 배고픈 것보다 인간이 배고프면 짐승처럼 된다는 게 더 슬펐어요. 아무리 거룩한 체해도 굶으면 쥐나 돼지나 똑같아진다는 그 모멸감, 그걸 알았죠.”

-참여문학에서 출발했지만 나중에 참여문학의 문제점을 비판하셨죠. 정보사회를 찬미했지만 요즘은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고요. 남보다 먼저 뭔가를 찾아내고 그걸 긍정하지만 이내 그 문제점도 먼저 발견해 고뇌하는 게 선생의 원래 모습입니까.

“내가 움직여야 그림자도 움직이지요. 참치는 헤엄을 치는 것이 숨을 쉬는 것이라고 해요. 잠잘 때에도 헤엄을 치다가 죽는 불쌍한 생물이지요. 저만이 아니라 글쓰는 사람, 지식인은 그렇게 운명지어진 존재지요. 창조적 사고의 바닥에는 비판적 사고가 있기 때문에 끝없이 부정·긍정, 긍정·부정을 되풀이합니다. 저는 하나의 신념에만 매달려 살아가는 사람이 제일 두려워요. 그들에게는 벽이 보호장치로 보이겠지만 저는 벽이 장애물로 보이거든요. 벽은 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요.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것이 제 신념이었지만 신체성을 상실한, 눈과 귀와 머리만 갖고 살아가는 사이버 세계의 허상을 경험하면서 ‘디지로그’의 세계를 주장하게 된 것이지요.”



#2. 돌고 돌아보니 결국 생명

- 그럼 요즘의 화두는 뭘 잡고 계십니까.

“맥 빠진다고 할지 모르지만 ‘창조적 생명’입니다. 생명의 시대를 창조하는 시대지요. ‘에코’라는 말보다 더 근본적인 생각. 한 마리 곤충이나 나나 우주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 말할 수 있는 게 뭐냐, 생명이다. 30억 년 전 태고의 바다에서 시작되었다는 DNA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 나와 우주와 맞닿아 있다는 것, 그런 것을 되돌아봐야 할 만큼 현대문명은 병들고 기계처럼 공전하고 있는 상태지요.”

- 그래서 ‘한국인 이야기’도 모태의 생명부터 시작한 겁니까.

“그래요. 두고 보면 알겠지만 한국인 이야기는 수단으로서의 삶인 ‘리빙(Living)’이 아니라 목적으로서의 삶인 ‘라이프(Life)’를 찾아가는 길고 긴 기행문의 한 토막이라고 할 수 있지요. 숨은 그림 찾기처럼 사물과 사물, 사건과 사건 사이에 숨어 있는 감춰진 삶의 의미들 말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쓰려고 하는 것은 개인의 전기도, 민족이나 국가의 역사도 아닌 ‘생명의 역사’지요. 한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숨쉬고 외치고 살고 싶다고 부르짖는 그 진짜 목소리의 역사.”

- 1963년에 연재하신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한국 전통가치에 대한 비판이었죠. 지금 연재하는 한국인 이야기에서는 긍정과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어떻게 쓰실 겁니까.

“긍정도 부정도 아닙니다. 한국인 이야기는 역사책에 나오는 왕들이나 위대한 영웅들이 아니라 그냥 우리 곁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지요. 하지만 개인사는 보편성이 없어요. 소설이 그런 걸 하지만 너무 개인만 있으니까. 나는 ‘히스토리(History)’와 ‘마이 스토리(My story)’의 접합, 주인공이 없는 소설, 역사가 있는 서정시, 머리로 느끼고 가슴으로 생각하는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이지요. 한국인 이야기는 내 개인사나 가족사가 아니라 내 시점을 통해서 본 한국인들이 겪었던 일제 식민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쟁·경제·정치·이념들이 지층을 이루는 정신과 문화의 지질학 혹은 실내악으로 편성된 교향곡 같은 그런 역사를 쓰겠다는 겁니다.”

-역사도, 소설도, 전기도, 회고록도 아니지만 그걸 모두 아우르는 거군요.

“역사만이 아니라 평생 써온 한국어의 기동훈련도 해보는 것이죠. 한국어로 글을 쓸 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모든 문장이 ‘다’자로 끝난다는 거죠. 기관총 쏘는 것 같이 다다다다 소리가 나요. 박목월 선생의 ‘나그네’란 시는 ‘다’자를 한 자도 쓰지 않고 마무리해 ‘다’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했지요. 저 역시 한국어의 한계에서 벗어나 밀도 높은 산문을 써보려고 모험을 하고 있지요. 그래서 한국인 이야기는 때로는 소설 같고 때로는 논문 같고 혹은 시 같기도 한 글이 매회 조금씩 다르게 기술되고 있지요. 주위에선 에세이 대신 논문 같은 ‘본격적인 글’을 쓰라고 해요. 하지만 제 관심은 격이 아니라 질이지요. 본격이 아니라 본질을 쓰는 것. 옷을 찢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찢는 글을 써야 하는데 우리는 겉모양의 옷 무늬에만 매달리는 일이 많아요. 작은 것들 속에 잠자고 있는 것들, 묻혀 있는 사건이 아니라 묻혀 있는 생각,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 말하지 않았던 것들 말입니다. 양말을 뒤집어보세요.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겉무늬에 속고 살았는지. 무늬가 아니라 양말을 짠 실들의 숨은 구조가 보일 것입니다.”

-정신과 의사들은 인간의 무의식을 드러내 치료한다던데 한국인의 무의식을 끄집어내려는 겁니까.

“무의식까지 갈 것도 없어요. 손전등을 갖고 깜깜한 방을 비추면 그 빛이 비춰지는 데만 보이잖아요. 각도를 틀면 전혀 다른 것, 안 보이던 곳이 보이죠. 기차 타고 갈 때 우측에 앉으면 우측만 보이고 좌측에 앉으면 좌측만 보여요.”

-읽고 나면 치유되는 게 있나요.

“치유된다, 안 된다는 읽는 사람에 달렸지만 적어도 ‘아하 그랬구나’ 하는 ‘아하 체험’을 주고 싶어요. 새로운 지식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었던 냇물 속에서 고기를 낚는 것 같은 거 말이지요. 명연주가는 ‘피아노를 치는 게 아니라 피아노에서 음을 끌어낸다’고 하는데 그렇게 한국인 이야기를 썼으면 합니다. 아직 사용하지 못한 한국인의 잠재력을 꺼내서 우리 손자들이 연주하도록 말이지요.”



#3. 평생 글쟁이가 드리는 글의 종합선물

-신문 연재라는 형식이 괜찮습니까.

“수백 장에 쓸 수도 있는 내용을 원고지 열 장으로 줄이는 제약이 고통스럽지만 그러한 제약에 도전하는 것이 글쓰는 재미지요. 넓은 마루 두고 왜 좁은 평형대에 올라가 체조를 하겠어요. 그래야 상상할 수 없는 기량이 나오지요. 그런데 꼭 필요한 주석이나 인용문에 대한 출전을 일일이 밝힐 수 없는 것, 자세히 소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난처함을 매일 겪어요. 나중에 책으로 묶어 낼 때 반드시 명기하고 보충할 터이니 독자들이 이해해 주길 바라요. 신문 독자들은 마켓 용어로 얼리 어답터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저는 다른 지면에서보다 신문에서 만나는 독자들이 더 고맙고 정이 가고 동행자로 느껴져요.”

-연재가 끝나면 여러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되죠.

“여름 이전에 제1권이 나올 겁니다. 특히 온라인 댓글에 익숙한 젊은 독자들에게 한국어가 뭐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게 어떤 것인지를 오프라인에서 함께 나누고 싶거든. 둥지를 가진 새만이 멀리 날아갈 수 있어요. 사이버 공간에서 마음껏 뛰어놀려면 한국어를 품을 수 있는 둥지가 필요해요.”

-『로마인 이야기』랑 어떻게 다른 겁니까.

“접근법이 전혀 달라요. 『로마인 이야기』는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쓴 거지만 ‘한국인 이야기’는 역사책에 오르지 못한, 하다못해 신문기사에도 오르내리지 않는 이야기들로 구성된 것이지요. 신문에 게재되는 것은 그중 테마가 되는 에세이 부분인데 실제로 한 권의 책으로 나올 때는 시, 소설, 대화 그리고 작품 분석과 그 학문적 배경이 되는 이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글이 포함될 겁니다. 평생 글을 써온 제가 독자에게 드리는 글의 종합선물 같은 거예요.”

-어린 시절의 묘사가 아주 생생한데 그런 기억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건 기억력이 아니라 레토릭이에요. 그때 그 장면을 그대로 쓴 게 아니라 이미지로 변형된 느낌을 재현한 것이지요.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한 것처럼 말이지요. 사실적이라기보다는 이미지인데 그럴 때는 기억의 정확성보다 상상력과 문체의 힘이 중요해요.”

-앞으로 어떤 내용이 나옵니까.

“전체 윤곽은 12개로 잡혀 있어요. 이제부터 내가 식민지 때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이 나오고, 해방공간, 전쟁, 대학 다닐 때, 문학평론가로 데뷔하던 문단 생활, 올림픽, 산업화, 정보화시대, 디지로그, 창조력의 시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몰락 과정 그리고 오늘의 세계 불황과 오바마의 미국까지…. 제일 마지막 권은 지성에서 영성에 이르는 미래의 문제에 대해 쓸 예정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케케묵은 질문을 다시 하자는 겁니다. 그것이 틀린 해답이라고 해도 중요한 것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이니까요. 그리고 미래는 오는 것도, 예측하는 것도, 그냥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창조하는 것이라는 걸 함께 나누고 싶은 거지요. 중앙일보 독자들과 함께 난파하지 않고 항해하다 보면, 우리 전체가 살 만한 넉넉한 육지가 나타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그 목격자가 되어 주세요.”

대담=김종혁 문화스포츠 에디터
정리=이은주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