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과 후경
무카로브스키는 언어의 인식적 기능과 표현적 기능을 구별하면서 언어의 표현면이 우세할 때 다시 말하면 표현행위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는 수법에 의하여 즉 언어가 보통의 사용법에서 최대로 일탈될 때, 그 언어는 시적으로 혹은 미적으로 사용되어진다고 하였다. 이러한 용법을 언의 전경화라고도 한다.
활자 사이를
코끼리 한 마리가 가고 있다
잠시 길을 잃을 뻔하다가
봄날의 먼 앵두 밭을 지나
코끼리는 활자 사이를 여전히
가고 있다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코끼리
코끼리는 발바닥도 반짝이는
은회색이다.
-김춘수 <은종이>
“활자 사이를/코끼리 한 마리가 가고 있다”라는 시행은 매우 충격적이다. 코끼리라는 시어의 배열은 아무리 상상해도 그 유사성이나 기존의 시학에서 말하는 사고의 경제성을 찾을 수가 없다. 그들 사이에는 친숙함도 없고 관습적인 자동화의 지각도 없다. 전혀 예상밖의 언어가 대치되어 일상의 어법을 일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낯설은 언어가 주는 당혹감은 오히려 지각의 새로운 충격으로 유도된다. 작품은 그 다음 시행에서도 계속 낯설은 용법을 활용하고 있다.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코끼리’라든지 ‘발바닥도 반짝이는 은회색’이라는 언어는 일상적인 어법이나 기존의 시에서 보기 어려운 낯설은 언어들이다.
낯설음의 언어, 언어의 전경화, 벗어남의 언어등의 용어는 물론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시어에 대한 명칭이지만 이러한 시어의 성격에 한 논의는 멀리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비유에 있어서 전이라든지 현대에 와서 리처즈가 말한 상호 충돌의 언어, 휠라이트가 말한 긴장의 언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지만 결국 시어의 생명은 기존의 일상적인 용법을 벗어나 새롭게 어법을 창조해 가는 포에트리의 정신이 그 핵심을 이루는 것이라 하겠다.
낯설음의 정도
그렇다면 여기서 같은 낯설음의 언어라 할지라도 낯익음과 낯설음의 차이, 전경과 배경의 거리에 따라서 시적 효과가 다를 수 있다는 평가의 문제를 생각 할 수 있다. 비록 낯설음의 언어가 시적이기는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1) 어린이가 노래한다
(2) 새가 노래한다
(3) 꽃이 노래한다
(4) 강물이 노래한다
(5) 돌이 노래한다
(6) 질투가 노래한다
(7) 고독이 노래한다
인용된 (1)은 노래하는 동작의 주체가 인간이므로 어법상으로나 의미상으로 보아 가장 정상적인 진술이다. (2)는 관용적이기는 하나 ‘노래한다’라는 말은 ‘지저귄다’가 전이된 것이어서 일단 (1)에서 보다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나 새는 같은 동물이라는 점에서 친근성을 느낀다. (3)의 경우는 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의 내포적 의미를 연상할 수 있지만 식물이기 때문에 (2)보다는 더욱 벗어난 형식이라 할 수 있다. (4)와 (5)는 같은 무생물인 사물이어서 (3)보다 벗어났지만 강물은 돌에 비하여 물이 흐르는 성질을 감안한다면 (5)가 더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6)과 (7)의 동작 주체는 모두 관념적인 추상어다. 따라서 (6) 과 (7)은 (5)보다 더욱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1)에서 (7)까지의 술어로 보면 숨은 화자의 주체는 ‘인간’이다. 따라서 예의 문장에서 벗어남의 정도를 살핀다면 인간<동물<식물<무생물<구체<추상의 순으로 도식화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과 동물의 관계라도 그 관계를 창조적으로 이미지화 한다면 높은 미학적 낯설음이 되는 것이다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서정주 <문둥이>
인용한 시에서 언어의 일상적인 용법이 벗어난 시어는 “꽃처럼 붉은 울음”이다. 여기서 꽃의 의미 자질은 식물, 시각, 기쁨 등으로 분석된다. 반면 울음의 의미자질은 꽃과 대조해 보면 우선 울음의 중체는 동물 붉은 빛의 시각이 아닌 청각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다. 따라서 각각의 의미 자질은 전혀 동질성이 없는 상호모순의 변별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유사성의 자질이 배제된 관계다. 따라서 그만큼 일탈성이나 낯설음의 충격도 크게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시어의 벗어남을 미학적으로 해설 할 때 몇 가지 고려 할 문제가 제기된다. 첫째로 앞서 인용한 문장에서 논의한 것은 모두 서술어를 공통으로 하는 동작의 주체만을 가지고 비교한 것인데 기관차가 떠난다와 해변이 기도한다의 경우 기도하다가 인간적이기는 하지만 기관차가 떠난다가 보다 친근감을 주고 있다. 둘째로는 언어 문화권에 따라 문법성이나 그 벗어남의 경우가 다르다는 것이다. 영어에서 바람이 문을열었다라는 말은 사람이 문을 열었다라는 말과 구별하지 않을 만큼 일상적인 용법이지만 우리는 전자를 표준에서 벗어난 것으로 생각한다. 시험에서 미역국을 먹었다라는 말은 우리에게는 시험에 실패했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지만 외국인들에겐 심한 일탈을 느낄 것이다. 셋째로는 문맥성의 문제다. 우리 딸은 남자다라고 하면 굳이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남자다운 성격을 가진 쾌할한 딸을 뜻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시집간 딸이 아들을 낳았다는 뜻으로 대화하는 가운데 사용한 구절이라면 일탈은커녕 오히려 가장 문법적인 문장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어의 낯설음에 관한 평가는 언어 관습이나 상화에 따라 각각 달리 논의 되어야 할 것이다.
-홍문표 시창작원리 p31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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