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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0년 세종대왕, 왕실연구기관 집현전 개편
조선시대 학문과 과학을 연구하던 기관이라면 집현전과 제2의 기관인 성균관을 들을 수 있다. 오늘은 세종께서 이 학문을 연구하며 학자들을 우대하던 집현전을 확대 개편하여 조선시대 학문의 르네상스을 이루었던 역사의 현장을 다같이 여행 해보기로 하겠다.
집현전은 무엇인가 개요와 집현전의 역사
올래는 고려 인종대에 중국 당나라의 제도를 받아들여 연영전(延英殿)을 집현전으로 개칭하고 대학사·학사를 두어 시강을 관장하게 했는데, 그 이전에도 백제의 박사(博士), 신라의 상문사(詳文師)·통문박사(通文博士)·서서원학사(瑞書院學士) 등처럼 그 명칭과 기능이 집현전제와 비슷한 것이 있었다. 집현전은 이후 충렬왕대까지는 그 운영이 불분명하고, 충렬왕 이후에 유명무실해졌다가 충목왕대에 시강을 담당하는 경연제의 설치와 함께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1399년(정종 1)에 고려의 집현전제를 본떠 집현전을 설치, 교리(校理)·설서(說書)·정자(正字)를 두어 경서를 강론하게 했고, 다음해에 보문각(寶文閣)으로 개칭했다가 폐지했다. 그후 1420년(세종 2)에 왕의 학문진흥에 대한 열망으로 당·송대의 집현전제와 고려 일대의 제관각제(諸館閣制)를 참작하여, 유교주의적 의례·제도의 확립과 대명 사대관계를 원만히 수행하기 위한 인재의 양성 및 문풍의 진작을 위해 집현전을 궁궐 안에 다시 두었다. 이 집현전은 이후 세종·문종의 파격적인 우대·육성을 받으면서 1456년(세조 2)에 사육신 사건을 계기로 혁파될 때까지 계속되어 세종대는 물론 조선 초기 유교주의국가 정립의 토대를 제공했다.
세종 24년 왕권이 약화되면서 언론 정치 기관으로 히미 확대되자 세조는 집현전 학사들의 단종 복위 운동을 계기로 집현전을 패지 해 버렸습니다.(그 당시 의정부의 역활 축소, 유향소 패지로 중앙 집권체제를 강화 시킬 목적이였다.)
그로 인해 그 이후로는 집현전의 역활을 성균관이 도맏아 하게 되었다.
세조의 집현전 패지 이유는 그의 직위의 역사을 돌아보야야 이해가 쉽다.
세종이 병들고 세자였던 문종이 대리청정을 하자, 그는 동생인 안평대군과 함께 신하들에게 세종과 문종의 교지를 전하기도 하였다.
세종의 뒤를 이은 문종이 재위한 지 2년여 만에 승하하고 12살의 어린고 몸이 세약한 조카 단종이 즉위하자 왕족의 대표로서 단종을 보필하는 한편, 무인 세력을 양성하여 왕위를 찬탈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1453년에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고 1455년 6월에는 결국 단종을 왕위에서 밀어내고 조선의 새로운 임금으로 등극하였다.
이후 13년 간 왕위에 있었다.
그러나 즉위한 이듬해에 성삼문을 비롯한 집현전 학사 출신 관료들이 단종의 복위를 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세조는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봉한 후 영월로 유배보냈다.
그 후 동생 금성대군이 또다시 단종 복위 사건을 일으키자 금성대군을 죽이고 단종도 같이 죽였다.
한글창제의 진실 집현전과는 상관없는 세종의 독단적 업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우리가 흔희 집현전의 가장큰 업적중 하나을 말하라 한다라면 세종대왕과 함께 한글창제을 말 할 것이다. 그러나 이건 엄연한 역사적 오해에서 시작이며 세종대왕의 독단적 업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이기문 충북대학 교수 "한글 창제 당시의 기록으로는 그런 증거가 하나도 없다. 친제했다고 하는 것을 잘모르는 시절에 그런 말이 나와서 모든 사람들한테 마치 사실인 것처럼 유포가 된 것이다. 실록에 전혀 그런 말이 없다. 잘못된 걸 모든 백성들이 그렇게 알고 있는데 세종이 알면 무덤속에서 통탄하고 게실 것이다."
세종실록(世宗實錄)의 내용
"이달 임금이 직접 언문 스물여덟자를 만들었다.. 이를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이른다."
한글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443년, 세종 재위 25년의 일이다. 실록에는 이것에 대해, 매우 간략한 기록만이 남겨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훈민정음의 창제는, 당시 큰 파문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관료들이, 집단으로 상소를 올려 한글 창제를 반대하고 나섰던 것이다. 집현전 부제학이었던 최만리를 대표로 신석조, 김문, 정창손 등 모두 일곱명의 학자들이 반대 상소를 올린 것이다.
이들은 모두 집현전 소속으로 집현전 내에서도 높은 지위에 있던 원로학자들이었다. 이들이 상소를 올린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굳이 언문을 만들어야 한다 하더라도 마땅히 재상에서 신하들까지 널리 상의한 후 행해야 할 것인데 갑자가 널리 펴려 하시니 그 옳음을 알지 못하겠나이다."
이들은, 상소를 통해 한글 창제가 세종의 독단적 행동이었음을 비난하고 있다. 훈민정음이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박종국 한글학회 연구원
"최만리도 훈민정음 창제한 것을 그때 안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왜냐면 그 전에 그런 기록이 없고 집현전이라면..부제학이라면 실제 실무담당 책임자다....미리 알았으면 그런 게 벌써 나오지 그때 나왔다는 것은 그분이 전혀 모르신게 아닌가?"
집현전의 최고 책임자였던 최만리가 한글 창제를 몰랐다면, 창제 과정에 집현전 학자들이 참여했다는 것은 어떻게 된 것일까?
한글 창제에 간여한 것으로 알려진 학자는 정인지(鄭麟趾), 최항(崔恒), 신숙주(申叔舟), 성삼문(成三問) 등 모두 일곱사람이다.
반대 상소를 낸 학자들이 원로라면, 이들은 대부분 젊은 나이로 소장파 학자에 속한다.
집현전 7학사라고도 불리는 이들의 이름은 조선왕조 문헌에서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성현의 용재총화 세종이 신숙주, 성삼문에게 명해 언문을 지었다는 것이다.
집현전 7학사 중에서도 한글 창제와 관련해 가장 주목을 받는 학자는 신숙주다.
세종의 총애를 받았을 뿐 아니라, 한글 관련 사업에 가장 많이 동원된 사람이 바로 신숙주였기 때문이다. 신숙주는 외국어에도 능통했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같은 사실도 그가 한글 창제에 참여했을 거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신숙주의 문집인 '보한제집'에는, 그의 행적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 신숙주가 직접 쓴 글을 비롯해, 당대 학자들이 기록한 그의 일대기가 실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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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는, 한글 스물 여덟 글자를 만든 것은 세종 임금이라고 적고 있다. 신숙주가 한 일은 세종의 명을 받아 한글 서적을 편찬하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학자들이 주목한 것은 신숙주가 요동에 다녀왔다는 기록이다.
당시 요동에 귀양와 있던 중국의 언어학자 황찬을 만나기 위해, 성삼문과 함께 여러차례 요동을 방문했다는 것이다. 신숙주가 황찬을 만난 것은 훈민정음 창제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기문 교수의 말이다. "질문한 것은 한글을 만드는 문제에 대해서 질문한 것이 아니고 한자를 바로 잡기 위해서 한자음에 관한 질문을 하러간 것이다. 한자음에 대한 이론인 성운학에 관해 질문하러 간 것이지, 한글을 만드는데 어떤 직접적인 조언을 얻기위해 간 것이 아니다. 그 연도 등은 조선실록을 보면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숙주가 황찬을 만나기 위해 요동으로 간 것은 언제일까? 조선 왕조실록을 검색해보기로 했다.
검색결과, 신숙주가 최초로 요동에 간 것은 1447년 1월. 한글이 만들어진 뒤 1년 2개월 후의 일이었다.
한글 창제에, 집현전 학자들이 참여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원로 학자들은 한글 창제 자체를 반대했고, 젊은 학자들도 한글 서적을 만드는데 참여했다는 사실만을 밝혀냈을 뿐이다.
결국, 세종 재위 25년에 만들어진 한글 스물 여덟자는 그들의 공로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훈민정음에 관한 책 중, 현재 전해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慧例本)'이다. 바로 이것이 세종 28년, 한글 반포를 위해 집현전 학자들이 만든 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해례본은 한글의 글자 하나하나에 대한 해석을 담고 있는 책이다. 집현전 학자였던 정인지가 쓴 이 책의 서문중에 한글을 만든 사람에 대한 언급이 있다.
여기서도 훈민정음 스물 여덞자를 만든 것은 세종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기문 교수 "신하들이 만들었는데 관례에 의해서 임금이 한 것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다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세종 임금 때 한글만 만든 것이 아니라 다른 사업도 많이했는데 그런것들은 다 한 사람들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공을 임금한테 돌리기 위해 했다고 하더라도 그당시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은 한글을 만든 것은 대단한 업적이 아니고 해서는 안될 일을 임금이 하고 있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공을 임금에게 돌리기 위해서 친제라는 표현을 썼다 이건 전혀 근거가 없는 그런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최만리(崔萬理)의 상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한글을 만든 것은 신기한 재주를 부린것에 불과한 것으로 전혀 유익할 것이 없다고 혹독한 비판이었다. 이에 대한 세종은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설총이 만든 이두는 옳다고 하면서 제 군주가 한 일을 그르다고 하는 까닭이 무엇이냐며 반박하고 있다. 세종 스스로 한글을 만든 것이 자신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세종이 직접 쓴 글속에서도 한글 창제를 다른 사람에게 명해서 만들게 했다는 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같은 사실은 훈민정음 서문의 글을 통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내 이랄 위하야~맹가노니..." 한글 스물 여덟 글자는 자신이 직접 만든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기문 교수 "친제라고 하는 표현은 훈민정음에서만 볼 수 있다. 다른데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면 훈민정음은 역시 친제다. 세종이 이것을 만들 수 있는 그런 여러 가지 학문적인 배경이나 능력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 역시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유력한 증거가 되지 않나 생각한다."
세종은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고 한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책에 몰두해, 건강이 나빠지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아버지 였던 태종(太宗)이 글을 읽지 못하도록 책을 모두 빼앗았다는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
세종은 이미, 왕자 시절에 학문에서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박종국 연구원 " 세종께서는 학문의 대가이시다. 어릴때부터 공부를 좋아했으니, 임금이 되어서는 늦게자고 일찍 일어나 공부한다. 그분 말씀이 나는 경서중에서 안본 책이 없다. 그 당시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을 다 본 분이시다."
세종 임금은 언어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한글로 운서를 번역하는 것에 대해 최만리 등의 학자가 그것이 터무니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자 이에 대한 세종의 반박은 단호했다.
세종의 반박 " 너희가 운서를 아느냐? 또 너희가 사성 칠음과 자모가 몇인 줄 아느냐?"
세종 스스로 언어학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같은 세종의 반박에 대해 당대 이름난 학자였던 집현전의 학자들은 단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한다.
한글을 만든 직후 세종은 동국정운을 편찬하도록 명한다.
이것은 방대한 분량의 중국음을, 모두 한글로 옮겨 적는 일이었다.
그런데 실무자였던 신숙주가 쓴 서문에 따르면 음 하나하나까지 모두 국왕에게 직접 재가를 받았다고 한다. 이것은 음운학에서 당대 최고의 학자가 바로 세종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집현전 학자들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정인지가 쓴 훈민정음 해례의 서문에서 그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즉, 세종의 명을 받아 한글 스물 여덟글자의 원리와 용례를 해석하는 일을 맡았다는 것이다.
이같은 기록으로 볼 때, 집현전 학자들은 한글 스물 여덟글자의 해석과 동국정운 등 한글 서적의 편찬사업에 관여했을 뿐이었다. 그것도 세종의 지시를 일일이 받아서 이루어 낸 일들이었다.
세종이 직접 쓴 글속에서도 한글 창제를 다른 사람에게 명해서 만들게 했다는 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같은 사실은 훈민정음 서문의 글을 통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내 이랄 위하야~맹가노니..." 한글 스물 여덟 글자는 자신이 직접 만든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유로 집현전과 세종대왕의 공동 훈민정음 한글 창제가 아닌 세종의 독단적 업적으로 보는 것이 올다.
달빛소녀/ 이승환(Faet.정성미) (장금이의꿈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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