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클럽 ‘드럭’에서 배출되어 인디씬에서 활약하다가 "말달리자"라는 곡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펑크(Punk) 록 밴드 크라잉 넛(Crying Nut)은 한국 인디 음악의 독보적인 존재이자 대표적인 록 밴드 중 하나로 성장했다.
크라잉넛은 펑크라는 음악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는 의미 있는 발자취를 새겼다. 그들은 1970년대 후반 영국을 평정했던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와 클래시(Clash)를 부활시키며 우리에게 없었던 펑크 록의 에너지와 파괴력을 전달했다. IMF 한파로 인해 몸과 마음이 얼어붙은 시점에 등장한 것도 영국 펑크의 태동 배경과 맞아 들어갔다. 게다가 단순히 펑크를 수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개량하고 국산화하여 '조선펑크'라는 여러 장르를 뒤섞었으면서도 매우 어울리고 색다른 장르를 창조해 냈다.
크라잉넛은 '벼멸구', '스판텍스', ‘서브웨이 스파이더스’ 등 다양한 이름을 거쳐 최종 결정된 밴드명인데, 이 이름은 어느 날 버스비까지 털어 호두과자로 끼니를 때우며 터덜터덜 집에 걸어가다가 떠올린 것이라고 한다. 쌍둥이 형제지간인 이상면(기타)과 상혁(드럼), 박윤식(보컬, 기타), 한경록(베이스), 이렇게 네 명과 후에 합류한 김인수(아코디언, 키보드)로 구성되어 있는 이들의 역사는 80년대 초반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동네에서 고등학교까지 모두 함께 다닌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동고동락하는 친구들이었으며, 대학교에 들어가 록 클럽 ‘드럭’에서 즉석으로 오디션을 보게 되었고 곧 드럭의 클럽 밴드로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드럭은 현재 코코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버거킹’, 옐로우키친의 전신인 '헤로인' 등의 하우스 밴드뿐만 아니라 ‘언니네 이발관’, ‘델리 스파이스’ 등 다양한 밴드들이 초청 공연을 벌이던 꽤 인기 있던 클럽이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다른 밴드들에 비해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드럭에서 자체 제작한 국내 최초의 인디 앨범 [Our Nation Vol.1]에 수록된 "말달리자"가 록 매니아들 사이에서 알려지면서 서서히 스타로 부상하게 되었다.
1998년 8월, 드디어 정규 앨범 1집 [크라잉 너트]를 대중 앞에 선보였다. 한국 젊은이들의 송가가 된 "말달리자"의 빅히트로 인디 밴드로는 최초로 10만장이라는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게 되었고, 특히 "닥쳐, 닥쳐, 닥치고 내 말 들어"라고 부르짖는 후렴구는 클럽 문화의 격동에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집이 펑크 록커로서의 자의식, 주류 음악 산업계 및 현실 문제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직설적으로 발언했다면, 1999년에 공개된 2집 [서커스 매직 유랑단]은 이와 비슷하면서도 한층 강화된 또 다른 정서가 가로지른다. 극단적인 가사와 음악의 "다죽자", "벗어" 같은 전형적인 펑크 메탈 넘버와 "탈출기", "더러운 도시"처럼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외침 속에서 나오는 쓸쓸함과 비애가 녹아 있는 곡들, 그리고 "배짱이"처럼 웃기면서도 정감 있는 노래들이 적절히 배치되었다. 타이틀곡인 “서커스 매직 유랑단”은 러시아 민요풍 도입부터 의도적인 듯 싸구려 냄새를 뿌리면서, 자신들을 '서커스 유랑단의 떠돌이 신사'로 규정하고,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가사로 젊은이들의 정서를 대변했다. 2집 앨범 역시 전작에 이어 1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2001년에 발표된 3집 [하수연가(下水戀歌)]는 탄탄한 팀웍으로 다져진 연주력은 물론이고 밴드 음악이 주는 통일되고 개성적인 면면을 한 곡마다 다양하게 표출했다. 전체적으로는 복고 성향이 두드러진다. 특히 타이틀곡으로 낙점된 "밤이 깊었네"는 부드러운 소프트 록 사운드를 선보였다. 영화 '이소룡을 찾아랏!'의 메인 테마로 삽입된 동명의 곡은 극적인 곡의 전개가 긴장감을 더하는 트랙이며, 영화 '신라의 달밤'과 이들이 출연한 CF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지독한 노래"는 빠른 보컬과 격렬한 리듬 전개가 인상적인 곡으로 커다란 인기를 누렸다.
2002년 여름에는 월드컵의 열기와 함께 "필살 Offside"를 발표하여 윤도현 밴드 등과 함께 월드컵 열기를 한층 돋운 바 있으며, 연말에는 아코디언 김인수를 제외한 멤버 4명이 동시에 군입대에 지원하여 입대하기 전 마지막 앨범인 4집 [고물 라디오]를 발표했다. 음반은 긴 시간동안 활동해 온 이들이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 주는 타이틀곡 "고물 라디오"와 쿵짝쿵짝하는 우스꽝스럽고 흥겨운 반주에 맞춰 전개되는 "퀵 서비스맨", 처량함을 강조하는 아코디언의 음색에 라틴 스타일의 기타 연주가 트로트로 변형된 듯한 "오드리", 모던 록 스타일의 "황금마차"와 펑크 스타일의 "사망가", "타이거 당췌!!" 등 다양한 음악으로 록 매니아들을 열광시켰다.
이 앨범을 끝으로 당당히 군에 입대하여 군악대에 열심히 복무하고 있는 이들을 그리워하는 록 매니아들을 위해 2003년 6월 하나의 선물이 도착하는데, 바로 2장짜리 실황 음반 [Best Wild Wild Live]였다. 인디와 언더의 동의어라 할 수 있는 ‘라이브 공연’이 생생히 담겨졌다는 점에서 더없이 값진 이 앨범은 무려 24곡이 수록되어 그룹의 진면목을 생생히 전달하였다.
크라잉넛은 2005년 1월 멤버들의 동반 제대와 동시에 왕성한 활동을 펼쳐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2006년 7월 그간에 쌓아 둔 창작 욕구를 모두 분출하듯 16곡이 담긴 5집 [OK 목장의 젖소]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10년 이상 꾸준한 활동을 해 온 밴드의 캐리어가 낳은 ‘자연 숙성’의 결과라는 평을 얻으며 크라잉넛 음악이 진일보되었음을 증명하였다. 레게의 터치가 가미된 타이틀곡 “명동콜링”은 마치 저 옛날 스팅과 폴리스가 "Every breath you take"를 하듯, 곡선적인 팝의 느낌을 강조하면서도 본령인 펑크의 직선 드라이브를 살짝 입히는 기막힌 교배를 들려주고 있다. 설사 예의 '단순무식' 펑크를 하더라도 "룩셈부르크"와 "마시자", "부딪쳐", "유원지의 밤"이 증명하듯 친근한 연주와 멜로디로 '국산 팝 펑크'의 모범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게다가 극단적으로 비칠 수 있는 심수봉과의 하모니 "물밑의 속삭임"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후에도 꾸준한 창작 활동으로 2007년 초반부터 "안녕고래", 영화 '좋지 아니한가'의 주제곡 "좋지 아니한가" 등의 싱글을 발표하며 지치지 않는 활동을 보여 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