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시는 어둠을 밝혀준 등불
목 필 균(시인)
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 앞에 며칠을 막막하게 보냈다. 청년기를 벗어나면서부터시와 함께 호흡하고 살아와서 그런지 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에 대한 질문은 무척 낯설기만 하다. 시에 대한 어떤 논리적 근거를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시는 내게 밥이고, 반찬이고, 산소이고, 약이었다.
일상에 쫓겨 삶의 뒤편에서 허우적거릴 때마다 삶의 뼈대를 세워주고 피를 돌게 하여 존재의 의미를 남겨주었다.
불혹의 나이가 되도록 내게 짐이 되었던 주변 식구들의 구조도는 행복한 미소보다 고통의 짓누름을 더 해주었지만, 어느 한 사람에게도 등 기대어,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그때마다 찾아와 그 외로움의 물꼬를 틀어서 숨을 쉬게 해 주었던 시. 침잠된 언어의 눈물로 꾹꾹 눌러쓴 원고지는 일탈하고 싶었던 황폐한 영혼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래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창작의 기쁨과 언어 속에 녹아든 아픔이 삶의 궤도를 일탈하는 것을 막아 주었다. 결국 시는 내게 오늘까지 올곧게 외길을 걸어오게 한 에너지를 충전해 주는 정신적 지주이다.
미소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미소 뒤에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 / 자꾸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림자 같은 것 / 마른 눈물 같은 것 / 먼 곳을 향하는 시선 같은 것 / 미소 뒤에 얼핏얼핏 어른거렸습니다. / 시에서도 그랬습니다. / 시인이라는 아픈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시인이 써 준 나의 첫인상 )
위 글은 어느 시인이 내 첫인상에 대해 써 준 글이다. 나는 그 분의 글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다. 시인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문단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시에 대한 책임감에 늘 불안했다. 내가 시인의 자질이나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작품을 쓰고 날 때마다 짓누르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감은 좋은 시를 쓰기 위한 어떤 치열한 연마의 학습을 해 본적이 없이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고, 어두웠던 삶의 하루 하루를 반추하면서 그저 가슴속에 고여 있는 쓰라림을 위무하기 위해 시를 써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저 순리대로 살고 싶었다. 시인으로써 자긍심을 높이기보다는 그저 나를 지켜주는 동반자로서 시를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꾸준한 작품 활동을 통해 얻어진 나름대로 시작법으로 언젠가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시를 한 편 쓸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져버리지 않고 있다. 그런 나의 목마름은 다음 시에 표출되어 있다.
기울어진 만큼 내달리다가도 / 분에 넘치면 넘쳐지고, / 메말라지면 목마른 대로 /
나누며 보태며 가는 길 / 언제나 네게는 끝이 없었다.
질러가지 못할 길은 돌아설 줄 알고 / 굽이치는 곳에선 핑그르르 여울지며 /
제 몸 깎아 자리 내어 준 산자락 / 허옇게 뿌리 보이면 그 상처 / 깊게 네 몸에 묻었다.
기울면 기운 만큼 내달리며 / 넘치고, 목마른 사랑 다 품어 안고, /
굽이치면 제 몸 부수어 모래톱으로 / 길을 열어 / 한 세월 쉼 없이 흐를 수 있는 /
너처럼, 너처럼 살고 싶다
― 졸시「강」전문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강, 내 삶의 종착지에 이를 때까지 기울면 기운 대로, 넘치고, 목마른 사람들 품어주는 강 같은 삶, 자연의 순리대로 기울면 기운 만큼 내달리며, 넘치고, 목마른 사랑 다 품어 안고, 굽이치면 제 몸 부수어 모래톱으로 길을 열어 한세월 쉼 없이 흐를 수 있는 영혼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바로 내겐 시라고 생각한다.
설핏 잠든 꿈속에서도 시를 찾은 것 같아 불을 켜고 일어서면 흔적없이 사라져서 절망하게도 하고, 날마다 떠돌던 도시에서 가끔은 소나기처럼 가슴 흥건하게 적셔주다가도 마음의 강물 다 마르게 눈물 한 방울도 보여주지 않는 시, 그것을 끌어안으려는 몸짓이 어찌 보면 지독한 짝사랑을 앓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런 천착의 길이 느닷없이 사는 것에 대한 지루함 때문에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원심력을 붙들어 주는 에너지인 것이다.
지하역 바닥에 깔린 라면박스처럼
남루한 노숙을 견디게 할
시 한 줄 쓰기를
살점 하나 온전한 것이 없는
자간과 행간 사이의 느낌표가
붉은 피딱지로 앉아 있고
따뜻한 아파트에
배불리 먹고 앉아도
시린 손끝
시 한 줄 쓰지 못하고
촛농의 두께를 재는 밤
깊어가는 어둠을
기대고 있던 하현달빛도
뒷걸음치는 새벽녘
돌아갈 곳 없는 가난이
이마에 접힌다
차오르는 여명이 목에 걸린다
가슴에서 튀어나오는
핏덩이 언어로 시 한 줄 쓰기를
― 졸시「가난한 시인」전문
외로움에 지쳐서 울 때 손을 잡아 주고, 깊게 드리운 어둠을 밀어내 준 시 안의 언어들. 그것들로 인해 내가 세상 속에 무엇으로 대접받고 인정받고 있는 지에 대한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시와 내가 빛과 그림자 양면으로 공존할 뿐이다.
다만 세상 속에서 떠도는 내 시들이 누군가에게 닿아서 그 사람의 눈물을 대신했으면 한다. 그 누군가가 단 한 사람이라도 상관없다. 소외받고, 어려운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 같은 그런 시를 쓰고 싶다. 내가 위로 받듯 그도 위로 받았으면 한다. 그것은 내가 시를 쓰는 목적이자 희망 사항이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날 야채 행상을 하는 할머니 굽은 등을 가려줄 커다란 우산 같은 시, 칼바람이 부는 겨울 날, 따뜻한 목도리가 되어 줄 시, 그믐날 밤에 더욱 초롱거리는 별빛으로 내려와 줄 한 가닥 희망이다. 시는 적어도 내게 그런 등불이었기에 그렇게 소망한다.
앞으로 노숙자의 등을 찬기로부터 막아줄 시는 내가 추구하는 시의 영혼이다. 남루한 시라도 대접받지 못한 사람들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언어가 담겼다면 그야 말로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즐거움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지금 배부르고, 등 따뜻해도 가슴 한구석에 잠재된 깊은 외로움의 골을 메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이 세상에 머무르는 동안 그것을 위무하는 시를 쓰는 것. 그것을 쓸 수 있는 힘이 나를 지탱해 줄 것이다. 그리고 시를 왜 쓰느냐에 대한 답은 영원히 하지 못하고 그저 묵묵히 그 자리에서 내 능력만큼의 시를 쓰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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