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전번에 이어서 시의 의미성(주제)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면서 체험이 주제와 연결되는 과정을 이야기해 봅시다. 먼저 시를 한 편 읽어 봅시다. 지난밤 내 꿈 속의 새처럼 어둠을 풀어 선회하는 꼬불꼬불한 강물이었나 민통선 부근, 파르라한 숲에서 자유롭지 못한 새 한 마리 포롱포롱 울음 울며 아직도 아픔이야 아픔이야 날개 찟긴 산하에는 말없이 흘러간 핏빛 세월 돌아올 수 없는 사람아 남과 북이 자유로운 구름 한 점 닮을 수 없었느니 응어리진 가슴이여 포연(砲煙)을 묻고 이젠 눈물 거두어 뜨거운 사랑, 어화둥둥 어화둥둥 동토(凍土)에 뿌릴거나 이 작품은 우리 역사의 수난으로 남아있는 현장 ‘민간통제선’을 들어가 보고 옛날에 씌어진 졸시 [민통선 부근] 입니다. 이렇게 6.25라는 민족상쟁의 비극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데 당시 참전했던 실제 경험이 있으면 더욱 절묘한 주제를 투영시킬 수도 있겠으나 민족의 한이 서린 현장을 생동감있게 직접 견학함으로써 얻어진 작품도 통일의 열망과 더불어 민족의 한이 되어버린 동일민족의 자유스러운 왕래가 어떤 한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직접체험이야말로 일생동안 잊지 못할 것이며 여기에서 걸러진 정서는 시에 있어서 중요한 이미지나 주제로 등장하게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체험과 함께 인생관이 형성되고 가치관을 정립하게 되는 점도 우리는 어떻게 진실된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하는 문제와 마찬가지로 시 쓰기에서 어떻게 진실을 표현할 것인가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체험을 상기해 보면, 어머니가 존재하는 단란한 행복에서 벗어나 어머니라는 존재의 보금자리와의 결별, 이것도 죽음이라는 사별(死別)의 거대한 정서는 존재와 소멸이라는 아무도 느낄 수 없는 체험을 통해서 생명의 창조와 사랑 등이 시의 주제로 승화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의 체험인 간접체험이 있습니다. 잘 아는 바와같이 간접체험은 선지자나 선각자가 이미 직접체험을 통해서 이루어 놓은 체험을 승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이미 소멸되고 없는(가 볼 수 없는) 상황을 이 선지자들의 기록을 통해서나 강론을 통해서 체득하는 경험입니다. 대체적으로 독서나 예술작품의 감상을 들 수 있겠는데 독서나 작품의 감상은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합니다. 그들이 이룩해 놓은 업적을 문자나 작품으로 우리는 좋은 체험을 획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시 한 편을 읽고 이야기를 계속합시다. 불타는 나무에는 새들이 날아들지 않는다 나는 보았다 신비한 생명 속에 깃든 연약한 욕망 어느날 내 육신 불태우면서 잔잔한 선율 몰아내는 어지러운 생명 내 영혼 곁으로 날아드는 새떼를 보았다 詩로 기들여진 영혼 한 웅큼 詩心으로 불태우는 사랑 나는 알겠다 몇 번이나 수렁으로 빨려든 허망 어느날 일상사의 슬픔 털어내면서 비범한 감성으로 추스르는 아름다운 혼불 내 솔직한 현주소를 깨우치고 있었다. 이 작품은 간접체험으로서의 졸시 [심우도(尋牛圖) 감상-5.시로 길들여진 영혼인가] 전문입니다. 우리가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림인데 ‘심우도’는 불자들의 수행과정이나 인생의 수양과정을 10단계로 소(牛)를 매체로 하여 형상화한 그림입니다. 이를 노래로 부른 것은 ‘심우송’이라 하여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잠깐 참고로 그 내용을 소개해보면 1. 소를 찾아서 헤매고(尋牛) 2. 소 발자국을 발견하고(見跡) 3. 드디어 소를 찾고(見牛) 4. 소를 얻어서(得牛) 5. 소를 먹이고(牧牛) 6. 피리를 불면서 집으로 돌아오지만(騎牛歸家) 7. 소는 없고 사람만 있으며(忘牛存人) 8. 다시 소도 사람도 없어지고(人牛俱忘) 9. 본래로 돌아간다(返本還源). 마지막 10도에서는 ‘흙과 재를 덮어써도 언제나 웃음(入廛垂手)’뿐이란 해탈을 암시하고 있어서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지표와 상통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그림을 감상하고 ‘심우송’을 일고 난 다음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행로가 이처럼 ‘소를 찾는 일’과 다름이 아니라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생각하면서 10편의 시가 완성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체험을 통해서 시의 의미를 투영할 수 있다는 것은 더욱 좋은 시 쓰기와 시 읽기에 많은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많은 체험을 통해서 지식이 포함된 영양소를 우리의 가슴 속에 가득 채우는 일이 중요하고 지적인 자양이 충만되었을 때 우리는 어떤 소재를 만나서 시적인 동기가 유발되더라도 즉각 주제와 이미지로 연결될 수 있다는 장점을 보유하게 될 것입니다. 영국의 시인이며 비평가인 리이드(H.E Read)의 말처럼 ‘시에 있어서의 논리는 느끼는 사상이다. 나는 어떤 사상이라도 그것이 이미지로서 이해되지 않는 한 시라고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시인이 사상가가 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사상이나 정서가 명징하다면 이미지나 주제의 구성 능력에서 월등하게 뛰어난 시의 창작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국의 소설가이며 평론가인 헉슬리(A.L Huxley)도 ‘체험에 대한 근본적인 본질은 시적인거야. 물론 자신의 생각이라는 건 모든 사람의 생각이거든. 그러니까 자기가 사는 세상은 한정된 교양의 최소공분모로 구성되겠지. 그렇지만 순수한 시는 언제 거기에 있지.--언제나’라는 말도 귀담아 들어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주제에 관한 한 다음에 정확하게 논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
출처 : 문학의 만남
글쓴이 : 남태평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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