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시 쓰기 준비를 위한 몇 가지 단계
한 편의 시를 쓰는데도 사람은 여러 도시와 주민들과 건물을 바라보아야 하고 짐승들과 날아가는 새와 아침을 향해서 피어날 때의 작은 꽃의 몸가짐을 알아야 한다. 모르는 시골의 길, 뜻하지 않은 상봉(相逢), 오래 전부터 생각하던 이별 등등이나 지금도 분명치 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것만으로는 넉넉지 않다. 여러 밤의 많은 사람들의 기억, 신음하는 여자의 부르짖음, 아이를 낳고 잠든 해쓱한 여자를 기억해야 한다. 죽어가는 사람의 곁에도 있어 봐야 하고 때때로 죽은 시체도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이런 기억을 가짐으로써도 넉넉하다고 할 수는 없다. 기억이 많아 졌을 때 그 기억을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엄청난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기억만으로 오로지 시가 될 수 없다. 그것들이 우리 속에서 피가 되고 눈짓과 몸가짐이 되고 우리 자신과 구별할 수 없는 것이 된 다음에야--그때라야 우연히 가장 귀한 시간에 시의 첫 구절이 그 가운데서 생겨나고 그로부터 시를 써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인용이 좀 길었지만 이것은 릴케의 말입니다. 한 편의 시를 잉태하기까지 한 시인이 겪고 인내해야 할 과정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시를 쓰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준비 단계가 있습니다.
시적인 발상(發想)이나 영감(靈感), 동기(動機), 언어(言語) 등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봅시다.
4-1. 발상에 대하여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주제나 표현 방법에 대해서 고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시는 본 것을 그냥 본대로, 느낀 것을 그저 느낀 그대로 쓴다면 굳이 고심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시는 본 것이나 느낀 것들을 어떻게 정서와 언어로, 나아가서는 사물의 그림(이미지)으로 나타내느냐, 그래서 어떻게 감동을 함께 할 수 있는 창조적인 예술로 승화시키느냐 하는 산고(産苦)와 같은 진통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시가 보이는 것이나 느끼는 것의 기록이 아니라 감추어진 것, 숨어 있는 뜻까지 나타내야 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보이지 않는 것, 감추어진 뜻을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여기 한 아름 꽃이 피어 있습니다. 아! 아름답다. 아! 이렇게 고울 수가....하는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일반적인 정서의 환기입니다. 그러나 이런 보편적인 느낌으로는 시적인 정서의 환기가 되지 못합니다. 시적인 느낌, 시적인 감동은 이러한 보편적이거나 일반적인 느낌을 특수한 감동으로 환기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아무도 체험하지 못한 감동으로 환기시켜야 비로소 시적인 창조의 발상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무엇을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형상화했을 때 시가 된다는 평범한 발상은 기초적인 한 단계이기도 합니다. 이 단계에서 보이는 것을 보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으로 발상차원을 한 차원 높게 이끌어 올려야 하고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로 느끼는 것에서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지 못해서 안 될 것으로 그 차원을 끌어 올려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다음과 같이 실제로 발상 연습에 들어가 보기로 합시다.
우리가 한 그루의 나무를 보고 있다고 합시다. 그 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을 때라면 우리는 꽃나무로 보면서 꽃의 아름다움에 감동할 것입니다. 그러나 꽃이 지고 있다면 무엇인가 공허감 같은 허무를 느낄 것입니다.
이처럼 한 그루의 나무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개화(開花) 또는 낙화(落花)로 그 모습이나 생태를 달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기분이나 분위기에 따라서도 그 나무의 모습은 각기 다른 감정과 다른 생각, 다른 생태로 보이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한 그루의 나무를 통해서 즐거움을 맛보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며(개화) 인생의 무상함이나 쓸쓸함까지도 느끼면서(낙화) 계절의 순리에 따른 자연이나 우주의 의미를 생각하는 등 여러 가지의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한 그루의 나무가 바로 인간의 존재와 연결될 수 있으며 생성과 소멸의 자연 원리이며 우주적인 산물로서 시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글이글 타는 눈알을 굴리며
하늘 위, 땅 밑을 굽어보고 쳐다보아
상상력이 알지 못하는 사물들의 모양을 드러내면
시인의 붓은 그에 따라
공허한 것에 육체를 주고
장소와 이름을 정해 준다.
위의 글은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한 대목을 인용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알지 못하는 사물들의 모양을 드러내’는 상상력의 기능이 분명하게 밝혀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알지 못하는 사물들이 모양을 드러낸다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한 그루 나무는 보이는 것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시인이 찾아내어 새로운 사실이나 진실, 그리고 진리로 이끌어 내어야 하는 것이 시적인 창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사물을 어떤 단계로 보아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모두 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나무를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일본의 어떤 시인은 그 차이를 단계적으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은 유형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① 나무를 그냥 나무로만 본다.
② 나무의 종류와 모양을 본다.
③ 나무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가를 본다.
④ 나무의 잎사귀들이 움직이는 모양을 자세히 본다.
⑤ 나무속에 승화되어 잇는 생명력을 본다.
⑥ 나무의 모양과 생명력의 상관관계에서 생기는 나무의 사상(의미)을 읽어 본다.
⑦ 나무를 매체로 하여 나무 저쪽에 잇는 세계를 본다.
이러한 여덟 단계의 발상차원 중에서 나는 어느 단계에 해당하고 있을까.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국내의 많은 문예창작과 교수들이나 시 강론자들이 초기 시 발상법이나 사물을 보는 법으로 흔히 인용하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①에서 ④까지의 단계는 나무의 외형적인 관찰에 지나지 않지만 일상적이거나 상식적인 차원으로서 눈에 보이는 부분 그대로를 보고 있을 뿐입니다. ③과 ④는 그래도 약간 한 걸음 앞선 태도이기는 하지만, 역시 나무의 외형적 관찰에 불과해서 깊이 있는 관찰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⑤에서 ⑥까지는 나무의 외형이 아니라 그 내면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이때 일상적, 상식적 차원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나무의 모습이 조금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무의 생명력이라든지, 그 생명력의 이미지나 사상 같은 것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이 단계에서는 그것들이 나무의 모습으로 형상을 얻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생명력이나 사상으로 바뀌어 진 나무의 그 변용은 나무에 대한 상상력의 소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이러한 나무는 그 의미의 측면에 있어서도 깊이 있는 내용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⑦⑧의 단계에 이르면 나무는 다시금 비약적 변용을 이루게 됩니다. ⑤⑥의 단계에서 아직 서있는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던 나무가 이 단계에서 보이지 않는 저쪽의 세계를 관망하고 있습니다.
한 그루의 나무를 통해서 이처럼 광대한 다른 세계를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기적입니다. 이런 기적을 낳는 원동력이 바로 상상력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이 상상력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계속해서 영감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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