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둥오리사촌에 관한 사유
/강경보
서울과학관 바닷새 전시관에서
바닷새 본다 재갈매기 쇠가마우지
고방오리 바다쇠오리 검둥오리사촌,
사촌?
검둥오리도 아니고
검둥오리 아닌 것도 아닌 그가
전시관 밖의 나를 쳐다보고 있다
제 속에 쟁여놓은 생각은 생각도 아니라는 듯
풍선처럼 부풀린 몸 꿈쩍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응시가
천년이 된 것처럼 바람 일으키고
파도소리를 다 밀고 오는데
어느새 박제된 내 가슴은
낯선 소용돌이 밑으로 가라앉는다
어찌 아니랴, 오래전부터 나는
검둥오리사촌의 사촌이었으니
나는 나이면서 내가 아니었으니 오늘도
저 고요 바깥에서 불편한 이름 하나
알처럼 품고 있다
(단평) 전기철 시인이 쓰는
시적 자아는 늘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존재한다.
자아의 존재가 현실적인 것 같았는데 비현실이고, 비현실의 상상속으로 들어가려 하면
현실에서 끌어당긴다.
결국 오도 가도 못한 채 박제된 자아의 부조리함을 내려다보고 있다.
"오래전부터 나는/검둥오리사촌의 사촌이었으니/나는 나이면서 내가 아니었으니 오늘도/
저 고요 바깥에서 불편한 이름 하나/알처럼 품고 있"을 수밖에 없다
시인은 박제된 존재로서의 자아에 대한 사유를 통해서 현실적인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를 갖는다. 그러므로 고요 밖, 즉 전시관 밖에서의 내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시간에 대한 허무이다.
출처 : 삶이 끝날때까지
글쓴이 : 娘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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