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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의 수업/작가, 작품론

한국 현대시의 큰 봉우리

by 拏俐♡나리 2011. 3. 30.

시인 김춘수 님

한국시단의 큰어른으로 존경받는 시인 김춘수 님. 서구 상징주의 시론을 받아들인 그는 우리 시사에서는 드물게 실존주의적 사유와 릴케의 감각을 이어받은 시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또한 시론가로서, 대학 교수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여 한국 시단의 맥을 잇는 걸출한 시인들을 많이 길러냈다.
그러나 그는 '꽃'의 시인으로 우리와 더욱 친숙하다. 젊은 시절 사랑하는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그의 시 '꽃'을 가지런한 글씨로 옮겨 적으며 마음 설레던 기억은 누구나 한 번쯤 갖고 있을 것이다.
1922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일본대학에서 공부했으며 1945년 유치환, 윤이상, 김상옥 등과 함께 '통영문화협회'를 만들었다. 이즈음 노동자를 위한 야간 중학과 유치원을 운영하면서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그 무렵에 동인지 「낭만파」를 펴냈다.
삶이 처한 비극적 상황과 존재론적 고독을 탐구했던 그의 초기 시의 시집들로는 「구름과 장미」 「늪」 「기(旗)」 「꽃의 소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등이 있다. 이어 '무의미시'로 자신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구축했던 1960년대 말부터 「처용」 「비에 젖은 달」 「처용단장」 등의 시집을 연이어 발표했다. 이 시집들에서 그는 투쟁보다는 화해를, 고통보다는 안정을, 탐구보다는 신앙을 희망하고 있다. 이는 5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시작활동을 해온 그의 시세계를 아우르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1981년 잠시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오랫동안 경북대, 영남대 등에서 후학들을 가르쳤다.
그 자신도 헤아리지 못할 만큼 많은 작품들을 써온 그는 일흔여섯의 나이에도 여전히 누구도 부럽지 않은 왕성한 창작욕을 보이고 있다. 그런 그가 시집 「들림, 도스토예프스키」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것도 바로 지난해 일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어왔어요. 그의 문학에서 발견한 인간과 사상, 사회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내가 오래 길들여 온 시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이 시집에는 젊은 시인들에게서도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상당한 실험정신이 담겨 있어 평론가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예술에는 완성이란 없다. 적어도 예술가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렇다. 시가 예술인 이상 부단한 탐구의 과정이 있을 뿐이다'라고 한 그의 예술관에 비춰 보면 이 시집은 단지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그가 요즈음 고민하고 있는 건 유례없는 국가 위기로 더욱 심각해진 출판계의 불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시인의 주머니가 더욱 작아져 시에 대한 용기를 잃는 것은 아닌지 그는 걱정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려운 시절에 대한 향수를 더듬었다. 1948년 8월에 첫시집인 「구름과 장미」를 자비로 출간하면서 그때만큼 시에 대한 감동과 애정을 진하게 느낀 적이 없었노라고 고백했다. 어쩌면 고통과 절망, 가난 속에서 피어나는 시의 꽃들이 더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다.
학창시절 삼형제가 모두 당시 명문이었던 경기중학교에 들어가 '수재 집안'으로 알려졌고 신문에 화제 기사까지 실렸던 터라 선친이 장남에게 걸었던 기대는 무척 컸다. 법대에 들어가 법학을 공부하기를 원했던 선친께서는 시인의 길을 택한 장남을 내내 못마땅해 하셨고, 틈만 나면 배곯아 죽는다는 시에 대한 성토를 그치지 않으셨다.
그러나 릴케의 시에 빠져 릴케에 관한 서적을 모조리 찾아 읽을 만큼 그의 시에 대한 강렬한 사랑은 아무도 꺾을 수 없었다. 헤아릴 수 없는 넓이와 깊이를 지닌 그의 시 한편 한편은 이러한 열정으로 깎고 다듬은 진실한 언어인 셈이다. 그러기에 그의 시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하나의 의미가 되고 하나의 꽃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는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 있는 우성아파트에서, 오십 년 넘게 듬직한 반려자로 있어준 반백의 아내와 함께 적잖게 지나온 생을 반추하며 남은 생을 가꿔 가고 있다.
거의 매일 동네 야산을 산책하는 일은 요즈음 그에게 남은 유일한 즐거움이다. 아파트 단지를 조금 벗어나면 숨은 듯 만 듯 소롯이 진입로가 보이는, 그야말로 이름도 없는 산이다. 마음이 포근히 젖어 오는 흙길을 따라 누군가 열심히 땅을 일궈 심어놓은 푸릇한 상치나 파 등을 살피며 한 바퀴 빙 돌고 들어오면 절로 힘이 난다고 한다.
여든이 머지 않은 나이에도 형형한 그의 눈빛에서 청년의 기개가 느껴지는 것은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이루어지는 산책 덕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의 시 '산보길'의 한 구절을 떠올려 보았다.

'어떤 늙은이가 내 뒤를 바짝 달라붙는다. 돌아보니 조막만한 다 으그러진 내 그림자다. 늦여름 지는 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뒤에서 받쳐주고 있다.'

오늘도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산길을 오르며, 벌써 이십여 편 넘게 발표한 시를 모아 시집으로 발간하는 일을 구상하고, 어려운 현실을 녹여 줄 좋은 시들이 이 땅에 많이많이 태어나기를 기원하고 있다.

필자 : 윤순례님 소설가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8년 0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