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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의 수업/시 배움 자료

[스크랩] [현대시 감상] 춘향전을 모티프로 한 시

by 拏俐♡나리 2009. 9. 9.

  당대에 전해져 내려오던 온갖 설화와 시가의 저수지였던 판소리「춘향가」는 그 본연의 모습을 지키면서 구전심수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근대 이후의 새로운 문화 양식과 만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조되기도 했다. 판소리의 이야기 골격에 바탕을 둔 완판본 과 경판본 등 판소리계 소설이 널리 전파되어 나간 것은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근대 이후에도 춘향 이야기는 우리 민족에게 쉼없이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폭넓은 문화적·양식적 자장을 형성해 나간 것이다. 창극, 영화, 마당놀이, 드라마, 오페라 등으로 장르 전환을 이루어 나갔고, 시나 소설에서도 자주 패러디되곤 했다. 북한에서도‘민족 가극’의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판소리「춘향가」는 장르로서나 내용으로서나 매우 넓은 변이의 폭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변이형마다 춘향은 모두 다른 성격과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야말로 천의 얼굴을 가진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보다「춘향가」가 그만큼 인간적 삶의 진실을 풍부하게 함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작품들을 우리는 통상 고전이라 부른다. 고전은 일반적으로 옛것이라는 의미가 강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예술 작품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는 않는다. 우리가 고전을 고전으로 대접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역사의 한 마디에서 가졌던 어떤 파급력 때문이 아니라, 당대에도, 후대에도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되는 그 자체의 생명력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판소리「춘향가」는 완결된 예술 텍스트가 아니라, 현재에도 살아 있고 창조의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는 생명체라 할 수 있겠다.

  현대 문학사에서도 매우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춘향을 새롭게 해석하여 재창조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시에서는 김영랑( 「춘향」, 「두견」), 노천명( 「춘향」), 서정주( 「추천사」, 「다시 밝은 날에」, 「춘향유문」), 박재삼( 「수정가」, 「바람 그림자를」, 「화상보」, 「무봉천지」), 전봉건( 「춘향 연가」), 송수권( 「5월의 사랑」, 「춘향이 생각」), 이수익( 「단오」), 복효근( 「춘향의 노래」) 등이 춘향을 새롭게 형상화한 바 있는데, 작품마다 조금씩 춘향의 모습은 달리 표현되고 있다. 때로는 이도령에 대한 춘향의 다짐이 독백처럼 진술되기도 하고, 춘향의 한이 부각되기도 하며, 때로는 춘향의 순수한 사랑이 예찬되기도 한다. 또 춘향의 여성성과 욕망이 강조되면서 관능적인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 (이상은 '「춘향가」, 끝나지 않은 사랑 노래' - 류수열(전주대 교수)에서 발췌)



춘향(春香)과 이도령(李道令) - 김소월

평양(平壤)에 대동강(大同江)은
우리 나라에
곱기로 으뜸가는 가람이지요

삼천리(三千里) 가다 가다 한가운데는
우뚝한 삼각산(三角山)이
솟기도 했소

그래 옳소 내 누님, 오오 누이님
우리 나라 섬기던 한 옛적에는
춘향(春香)과 이도령(李道令)도 살았다지요

이편(便)에는 함양(咸陽), 저편(便)에 담양(潭陽),
꿈에는 가끔가끔 山을 넘어
오작교(烏鵲橋) 찾아 찾아가기도 했소

그래 옳소 누이님 오오 내 누님
해 돋고 달 돋아 남원(南原) 땅에는
성춘향(成春香) 아가씨가 살았다지요



다시 밝은 날에―춘향(春香)의 말2 - 서정주

신령님,
처음 내 마음은 수천만 마리
노고지리 우는 날의 아지랭이 같았습니다.
번쩍이는 비늘을 단 고기들이 헤엄치는
초록의 강 물결
어우러져 날으는 아기구름 같았습니다.

신령님,
그러나 그의 모습으로 어느 날 당신이 내게 오셨을 때
나는 미친 회오리바람이 되었습니다.
쏟아져 내리는 벼랑의 폭포,
쏟아져 내리는 소나기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령님,
바닷물이 작은 여울을 마시듯
당신이 다시 그를 데려가시고
그 훠―ㄴ한 내 마음에
마지막 타는 저녁 노을을 두셨습니다.
그리고는 또 기인 밤을 두셨습니다.

신령님,
그리하여 또 한번 내 위에 밝는 날
이제
산골에 피어나는 도라지꽃 같은
내 마음의 빛깔은 당신의 사랑입니다.
(시집 <서정주 시선>, 1956)



춘향유문(春香遺文)-춘향의 말 3 - 서정주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예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예요.
(시집 <서정주 시선>, 1956)



춘향(春香) - 김영랑

큰 칼 쓰고 옥(獄)에 든 춘향이는
제 마음이 그리도 독했던가 놀래었다
성문이 부서져도 이 악물고
사또를 노려보던 교만한 눈
그 옛날 성학사(成學士) 박팽년(朴彭年)이
오불지짐에도 태연하였음을 알았었니라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원통코 독한 마음 잠과 꿈을 이뤘으랴
옥방(獄房) 첫날밤은 길고도 무서워라
서름이 사무치고 지쳐 쓰러지면
남강(南江)의 외론 혼(魂)은 불리어 나왔느니
논개(論介)! 어린 춘향을 꼭 안아
밤새워 마음과 살을 어루만지다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사랑이 무엇이기
정절(貞節)이 무엇이기
그 때문에 꽃의 춘향 그만 옥사(獄死)한단말가
지네 구렁이 같은 변학도(卞學徒)의
흉칙한 얼굴에 까무러쳐도
어린 가슴 달큼히 지켜주는 도련님 생각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상하고 멍든 자리 마디마디 문지르며
눈물은 타고 남은 간을 젖어 내렸다
버들잎이 창살에 선뜻 스치는 날도
도련님 말방울 소리는 아니 들렸다
삼경(三更)을 세오다가 그는 고만 단장(斷腸)하다
두견이 울어 두견이 울어 남원(南原) 고을도 깨어지고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문장>18호, 1940.7)



두견(杜鵑) - 김영랑

울어 피를 뱉고 뱉은 피는 도루 삼켜
평생을 원한과 슬픔에 지친 적은 새,
너는 너른 세상에 서름을 피로 새기러 오고,
네 눈물은 수천(數千) 세월을 끊임없이 흐려 놓았다.
여기는 먼 남(南)쪽 땅 너 쫓겨 숨은직한 외딴 곳,
달빛 너무도 황홀하여 호젓한 이 새벽을
송긔한 네 울음 천(千)길 바다 밑 고기를 놀래이고,
하늘가 어린 별들 버르르 떨리겠고나.

몇 해라 이 삼경(三更)에 빙빙 도는 눈물을
씻지는 못하고 고인 그대로 흘리웠느니,
서럽고 외롭고 여윈 이 몸은
퍼붓는 네 술잔에 그만 지늘꼈느니,
무섬증 드는 이 새벽까지 울리는 저승의 노래,
저기 성(城) 밑을 돌아나가는 죽음의 자랑찬 소리여,
달빛 오히려 마음 어둘 저 흰 등 흐느껴 가신다.
오래 시들어 파리한 마음마저 가고지워라.

비탄의 넋이 붉은 마음만 낱낱 시들피느니
짙은 봄 옥 속 춘향(春香)이 아니 죽었을라디야
옛날 왕궁(王宮)을 나선 나이 어린 임금이
산골에 홀로 우시다 너를 따라 가시었느니
고금도(古今島) 마주 보이는 남쪽 바닷가 한많은 귀향길
천리 망아지 얼렁소리 쇤듯 멈추고
선비 여윈 얼굴 푸른 물에 띠웠을 제
네 한(恨)된 울음 죽음을 호려 불렀으리라

너 아니 울어도 이 세상 서럽고 쓰린 것을
이른 봄 수풀이 초록빛 들어 풀내음새 그윽하고
가는 댓잎에 초생달 매달려 애틋한 밝은 어둠을
너 몹시 안타까워 포실거리며 훗훗 목메었느니
아니 울고는 하마 죽어 없으리 오! 불행(不幸)의 넋이여.
우거진 진달래 와직 지우는 이 삼경의 네 울음
희미한 줄 산이 살풋 물러서고
조고만 시골이 흥청 깨어진다.



자연(自然)-춘향이 마음 초(抄) 2 - 박재삼

뉘라 알리
어느 가지에서는 연신 피고
어느 가지에서는 또한 지고들 하는
움직일 줄 아는 내 마음 꽃나무는
내 얼굴에 가지 벋은 채
참말로 참말로
사랑 때문에
햇살 때문에
못 이겨 그냥 그
웃어진다 울어진다 하겠네.
(시집 <춘향이 마음>, 1962)


수정가 - 박재삼

집을 치면, 정화수 잔잔한 위에 아침마다 새로 생기는 물방울의 선선한 우물집이었을레. 또한 윤이 나는 마루의, 그 끝에 평상의, 갈앉은 뜨락의, 물냄새 창창한 그런 집이었을레. 서방님은 바람 같단들 어느 때고 바람은 어려울 따름. 그 옆에 순순한 스러지는 물방울의 찬란한 춘향이 마음이 아니었을레.
하루에 몇 번쯤 푸른 산 언덕들을 눈아래 보았을까나. 그러면 그때마다 일렁여 오는 푸른 그리움에 어울려, 흐느껴 물살짓는 어깨가 얼마쯤 하였을까나, 산과 언덕들의 만리 같은 물살을 굽어보는, 춘향은 바람에 어울린 수정빛 임자가 아니었을까나.


5월의 노래 - 송수권

누이야 너는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가
오월의 저 밝은 산색이 청자를 만들고 백자를 만들고
저 나직한 능선들이 그 항아리의 부드러운 선들을 만들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누이야 너 또한 사랑하지 않을 것인가
네 사는 마을 저 떠도는 흰구름들과 앞산을 깨우는
신록들의 연한 빛과 밝은 빛 하나로 넘쳐흐르는 강물을
너 또한 사랑하지 않을 것인가
푸른 새매 한 마리가 하늘 속을 곤두박질하며 지우는
이 소리 없는 선들을, 환한 대낮의 정적 속에
물밀듯 터져오는 이 화녕끼 같은 사랑을
그러한 날 누이야, 수틀 속에 헛발을 딛어
치맛말을 풀어 흘린 춘향이의 열두 시름 간장이
우리네 산에 들에 언덕에 있음직한 그 풀꽃 같은 사랑 이야기가
절로는 신들린 가락으로 넘쳐흐르지 않겠는가
저 월매의 기와집 네 추녀끝이 허공에 나뜨는 날.



단오 - 이수익

음오월에도 초닷새 수릿날엔
아내여, 그대는 춘향이가 되라.
그러면 나는 먼 숲에 숨어 들어 그대를 바라보는
이도령이 되리라.

창포를 물에 풀어 머리를 감고
그대는 열 일곱, 그 나이쯤이 되어
버들가지엔 두 가닥 그넷줄을 매어
그대 그리움을 힘껏 밟아 하늘로 오르면,
나도 오늘밤엔 그대에게
오래도록 긴 긴 편지를 쓰리라.

하늘로 솟구쳤다 초여름 서늘한 흰구름만 보고
숨어 섰던 날 보지 못한 그대의 안타까움을
내가 아노라고……
그대 잠든 꿈길 위에 부치리라.



춘향의 노래 - 복효근

지리산은
지리산으로 천 년을 지리산이듯
도련님은 그렇게 하늘 높은 지리산입니다

섬진강은
또 천 년을 가도 섬진강이듯
나는 땅 낮은 섬진강입니다

그러나 또 한껏 이렇지요
지리산이 제 살 속에 낸 길에
섬진강을 안고 흐르듯
나는 도련님 속에 흐르는 강입니다

섬진강이 깊어진 제 가슴에
지리산을 담아 거울처럼 비춰주듯
도련님은 내 안에 서있는 산입니다

땅이 땅이면서 하늘인 곳
하늘이 하늘이면서 땅인 자리에
엮어가는 꿈
그것이 사랑이라면

땅 낮은 섬진강 도련님과
하늘 높은 지리산 내가 엮는 꿈
너나들이 우리
사랑은 단 하루도 천 년입니다

출처 : 문선생언어논술
글쓴이 : 문선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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