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삼국유사]를 흔히 야사(野史)라 부른다. 그러나 입증하기 어려운 뒷방 이야기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 강하게 들리는 말이 야사이다. 그렇다면 [삼국유사]에 대한 정당한 대우가 아니다. 그래서 ‘대안사서(代案史書)’라고 부르자는 주장이 최근에 나왔다. 당대의 기준에서도 정식 사서라 할 수 없는 책이지만, [삼국유사]는 오히려 전혀 다른 세계의 발견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뜻있는 작명이 아닐 수 없다. 대안사서는 [삼국사기]를 정사라고 불렀을 때 상대적으로 쓰일 수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일까? 우리는 그것을 생활사(生活史)로 요약해 본다. 위로는 왕에서부터 아래로는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나라를 이루었던 이 땅의 민중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삼국유사]는 수많은 일화를 적절히 정리하여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은 곧 일연의 세계관이기도 하였다. [삼국유사]는 왕력(王曆)∙기이(紀異)∙흥법(興法)∙탑상(塔像)∙의해(義解)∙신주(神呪)∙감통(感通)∙피은(避隱)∙효선(孝善) 등 9개의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인 구성을 본다면 연대기로서 왕력, 준 역사서로서 기이, 불교 문화사적 관점에서 당대인의 삶을 기록한 흥법 이하의 여러 편으로 삼대분(三大分)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왕력 편은 [삼국유사] 전체 기술의 기반이 되는 부분이고, 기이 편은 양적으로도 역사자료의 가치가 충분히 있지만, 기술방식이나 역사관에서 [삼국사기]와 현저히 다른 질적인 면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특히 기이 편은 그 서문에서 밝힌바, 우리에게 뿌리가 되는 나라와 왕들을 비록 기이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나 굳이 수록하겠다는 것, 그래서 단군 신화가 처음으로 문서 상에 기록되었다는 데에서 더는 강조할 필요가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편, 흥법 편 이하의 편들은 불교 문화사적 관점에서 기록하였다. 일연은 승려로서 분명한 불교적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불교 문화사란 그런 저자에게서 나올 수 있는 당연한 결과다. 다만 불교 하나로 모든 것을 재단하고 있지 않다는 점, 그러므로 읽는 이도 어떤 편협한 선입관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아가 흥법 편 이하가 중국의 승전(僧傳)을 많이 모방했다는 설도 있다. 그런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쓰면서 [삼국사기] 같은 역사서로만, [고승전] 같은 불교서로만 만족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것들이 어우러지면서 우리 고대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해 볼 어떤 틀을 만들어냈다고 보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삼국유사]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그것은 일연이 [삼국유사]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바를 반추했을 때 드러난다. 생활이 묻어 있는 이야기이고, 민족의 얼굴을 그려볼 수 있는 자료이다. 우리는 거기서 생활을 발견하고 민족을 재발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