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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의 수업/문학과 관련하여

[문화비평]모든것을 의심하라..

by 拏俐♡나리 2010. 5. 27.

[문화비평]모든것을 의심하라..  

2005/08/10 11:18

"모든 것을 의심하라"

- 기호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짧은 생각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첫 날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고 성경에 쓰여있다. 동어반복처럼 보이는 이 구절에서, 앞의 '빛'은 '음성기호'를, 뒤의 '빛'은 '실재'를 의미한다. 신은 기호를 말함으로써 실재를 창조했지만, 신이 만들어낸 최초의 인간 아담이 맨 먼저 한 일은 정확히 반대였다. 그가 눈을 떴을 때 자신 앞에 놓여진 수많은 동식물들에게 아담은 이름을 지어준다. 존재하는 사물에 기호를 붙여주는 일이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그 직후였다. 이처럼 인간은 기호를 통해 세상을 재현하는 존재다.

 

'소'나 'ox'라는 기호가 실재의 구체적 '소'와는 아무 상관없듯 사물에 붙은 기호는 자의적이다. '소'가 '개'나 '말'이 아닌 이유는 '소'가 실재 '소'의 본질적 특징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소'가 '개'도 아니고 '말'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특정 기호가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이 여타 기호들과 다른 '차이'를 가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든 기호들은 본질적으로 자의적이기 때문에 그 기호와 대상 간에는 언제나 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이 거리를 보지 못하고 기호를 대상으로 인식하거나 기호를 본질로 여길 경우, 환상은 시작된다.

 

기호는 이처럼 세상을 표상하기 때문에, 기호를 맘대로 다스리는 자는 세상을 다스릴 수도 있다. 가령, 이라크의 반미무장세력을 '테러리스트'나 '악'이라는 기호로 부르는 부시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악'과 '테러'를 물리치기 위해 자원해서 전쟁터로 간다. 권력자들은 언제나 이 역학관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기호를 지배하기 위해 노력한다. 세상의 어떤 일들을 특정한 기호로 표상하고, 그것이 자연스럽다는 믿음을 심어놓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의미화'라고 한다면, 권력은 이런 의미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ISA)라고 명명한 가족, 교회, 학교 등과 같은 기관들이다.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이러한 조직 속에서 자람으로써 주체를 형성하기 때문에 자신이 배운 것이 자연스럽고 옳다고 믿게 된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사람들이 주체로 만들어지는 이 과정이 이데올로기화 과정이다.

 

국가, 국민, 민족, 가족, 종교, 결혼 등과 같은 개념들 역시 하나의 기호다. 이것들은 ISA에 의해 끊임없이 교육되면서 주체를 형성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치 이런 개념들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 본질적인 것, 인간적인 것으로 여기게 된다. 하지만, 기호의 자의성과 차이의 정치, 의미화와 이데올로기 과정에 대한 인식을 얻은 후에 이 기호들을 다시 보게 되면 이것들은 더이상 자연스러운 것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개념들은 모두 어떤 특정한 역사적 국면 속에서 '탄생'한 특정한 개념들이기 때문이다. 백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미국 땅에 살았던 원주민들에게 있어서 '국가'라는 개념은 있지도 않았지만, 핏빛 정복의 역사 이후 현재의 미국은 하나의 '국가'로 우뚝 서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국민'이라는 말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오늘날 한국에서 '국민'은 노숙자나 조선족, 외국인 노동자들을 모두 제외한 개념이다. 국가, 민족, 종교 등과 같은 기호들에는 대개 좋은 의미가 덧붙어 있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그것들이 포함하지 못하는 '여분'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가령 동성애자에게 있어서 '결혼'의 의미는 이성애자들이 말하는 '결혼'과 많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