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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의 수업/작가, 작품론

삶의 진실을 파헤치는 치열한 작가정신/이청준

by 拏俐♡나리 2010. 5. 20.

소설가 이청준 님

신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인간 존재의 의미는 흔히 고통과 어두움이 깃든 곳에서 쉽게 되비춰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둘러싼 극단적인 체험에서가 아닐까.
작가 이청준 님이 그간에 쏟아 놓았던 무수한 삶의 이야기가 결국 소설 '축제'로 빛을 발하고, 누군가의 지적처럼 '시대와 자신에게 성실하기를 요구하는 그의 고문'을 받고자 하는 이들이 놀랍도록 많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그를 찾아가 보았다.
편안한 얼굴에 흰 머리가 인상적인 이청준 님은 원래 말을 아끼는 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날은 첫 말부터 너무도 순조롭고 훈훈해 이 무슨 복이냐 싶은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한번 나이 들어봐요. 우리 나이가 되면 말이 준다니까요. 같은 얘기 자꾸 해 봐야 나이 많은 사람 잔소리밖에 더 됩니까. 그리고 말만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기다리면서 나이가 가르쳐주면 그때 하고 싶은 얘기 하고 그러죠 뭐.”
평소 인터뷰나 방송 출연을 잘 안하는 것에 대한 변명치고는 상당히 멋스럽다. 해방 이후 다작 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힐 만큼 하고 싶은 얘기 실컷 하셨으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니냐고 물으니, 빙그레 웃기만 한다.
이청준 님은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당신들의 천국'을 비롯해 '이어도', '소문의 벽', '키작은 자유인', '잔인한 도시,' '치질과 자존심','웃음 선생', '돌담 이야기', '흰옷', '서편제'등 1백 5십여 편이라는 적지않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상징적이지만 사실 묘사를 놓치지 않고, 이해와 용서를 얘기하지만 섣부르지 않고, 심각한 주제를 다루지만 결코 난해하지 않은 그의 작품들은 오랫동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38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65년 단편 '퇴원'으로 문단에 데뷔한 이래, 이청준 님은 늘 '다음에 쓸 것은 없다. 이 글이 마지막이다.' 라는 생각으로 글을 써 왔다고 한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 열중하려면 정신적인 고통도 크지만, 육체적인 에너지 소비도 무시할 수 없지요. 볼펜만 가지고 한 30년을 쓰다 보니, 이젠 오른팔에 신경통이 생기고 소화 불량에 걸릴 지경이네요.”
그에게 있어서 문학이란 대관절 무엇이길래 이같은 천형을 자처하고 살아온 것일까.
“일단 제가 촌사람이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시골내기가 세상을 접하는 과정과 방법은 도시 사람들과 다르죠. 도회지의 삶은 해석된 세계를 학습으로 배우는 과정이라면, 시골의 삶은 자연 속에서 스스로 깨닫는 세계입니다. 원시적이고 촌스럽죠. 자연히 뒤질 수밖에 없고, 또 극복 과정이 필요합니다. 현실에서는 대등하게 누리지 못한다 해도, 꿈은 귀하게 살아날 수 있잖아요. 꿈이 아름다우면 삶이 10분의 1이라도 더 아름다울테고…. 그것이 문학적 속성과 맞아 떨어진거죠.”
그는 자신의 글쓰기를 그대로 시골에 살아 버리면 없었을, 소외된 삶을 이기는 일기 쓰기와 비슷하다고 표현한다. 거기에는 또 여덟살 때 여의어 기억조차 남아있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결코 순탄치 않았던 어린시절, 문학적 모티브가 되어 준 어머니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가 곁들여져 있다.
특히 먼 장흥땅에 홀로 남겨둔 노모는 그에게 늘 죄스러움으로 다가왔다. 그 마음을 담은 것으로는 단편 '눈길', '기억여행', 동화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 등이 있고,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소설 '축제'로 탄생된 것이다.
이처럼 개인적 체험에서 시작했지만 소설'축제'는 늙음과 죽음으로부터 결코 도망칠 수 없는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들려주는 아름다운 진실이 되고 있다.
“문학의 책임은 세상 전체에 대해 행복과 꿈을 마련해주고, 밝은 세상에 대한 이념적인 문을 열어주는 것이지요. 그러나 제겐 삶의 과정으로서의 문학이 먼저였고, 작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은 나중에 생긴 것이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볼펜 한 자루와 노트만 있으면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첨단 정보와 온갖 문명의 혜택 속에 살고 있으니, 소설 쓰기도 많이 달라졌어요.”
그는 문학의 목적도 결국 삶에 찌들다 보면 옹고집이 되기 쉬운 정신에 탄력성을 주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덧붙인다.
동반 창작으로 화제를 모은 '축제'를 비롯해 그동안 '서편제', '석화촌', '이어도'등 그의 소설이 숱하게 영상으로 옮겨질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생각 때문이었을까.
“기본적으로 장르 간의 대화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음악을 듣고 영감을 얻어 시나 소설을 쓰는 경우도 있잖아요. 다른 매체에 동기를 주고 영감을 주고, 그 감동을 표현하고 싶다면 하도록 하는 것이 자연스럽죠. 서편제 보고 시를 쓴 사람도 있던데요.”
지금은 어릴 때부터 판소리 다섯 마당의 멋을 쉽게 만나게 하려는 뜻에서 재미있게 동화로 판소리 얘기를 써 내려가고 있고, 간간이 꽁트를 쓰고 있다고 한다.
“여가 시간요? 멍청히 있는 게 제일 편하고 좋아요. 문학하지 않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고 여행도 즐기는 편입니다.”
책은 세상을 옮겨 놓은 것인데 여행을 통해서 얻을 것을 책 속에서 얻으려는 것은 미련한 짓이라는, 작가로서는 득 될게 없는 재미난 충고를 마지막으로 자리를 접었다.


필자 : 조선혜님 기자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6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