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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펌/좋은 시 모음

형화(螢火) / 함형수

by 拏俐♡나리 2010. 8. 17.

형화(螢火) / 함형수(1914~1946)

 

 

논두렁에 잠방이를 적시고 개울물에

발을 적시고

어두운 잔디밭을 조오그만 가닥손을

치어든 채

소년은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달렸다

파아란 반딧불, 그것은 움직이는 또다른 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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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의 비명(碑銘) / 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碑)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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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애 동안 시집 한 권 없이 간 사람

그러나 그가 쓴 시 몇 편이 문학이라는 책갈피에 오래오래 남은 사람

그가 함형수이다.

 

그의 대표적인 시

'해바라기의 비명(碑銘)"의 마직막 행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도 그렇지만 그가 오래오래 남는 이유 중 하나는

그에게는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의 꿈

또는 이 시에서 보는 것과 같이

별을 두 손으로 받쳐들고 달리는 소년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의 시를 읽으면 그런 별의 말소리가 들린다

반딧불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소리치는 별의 메시지

메시지가 손에 잡혀 움직이는 시

영원히 좋은 시다.

 

<강은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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