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한 알 / 장석주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게다
대추나무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장석주 시집 『달과 물안개』중에서
----------------------------------------------------------------
한 알의 대추도 저절로 영글지 않습니다
천둥 몇 개, 땡볕 두어 달의 역경 끝에 익어 갑니다
하물며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베트남을 통일한 호치민의 어록에 이런 대목이 있다고 합니다
'절구공이 아래서 짓이겨지는 쌀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그러나 수없이 두들김을 당한 다음에는 목화처럼 하얗게 쏟아진다
이 세상 인간사도 때로는 이와 같아서 역경이 사람을 빛나는 옥으로 바꾸어 놓는다.'
맹렬하던 더위도 제법 주춤거리고 있습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처럼 이글거리지만 곧 가을이 올 것입니다
장글거리는 태양에 맞서 제 몫을 살아온 것들만이
제 맛을 내는 열매를 튼실하게 영글어 내겠지요
'좋은 글펌 > 좋은 시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하는 까닭 / 한용운 (0) | 2010.08.19 |
---|---|
너를 만나면 더 멋지게 살고 싶어진다 / 용혜원 (0) | 2010.08.19 |
서시 / 이성복 (0) | 2010.08.18 |
형화(螢火) / 함형수 (0) | 2010.08.17 |
꽃 진 자리에 / 문태준 (0) | 2010.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