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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펌/좋은 시 모음

대추 한 알 / 장석주

by 拏俐♡나리 2010. 8. 18.

대추 한 알 / 장석주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게다

 

대추나무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장석주 시집 『달과 물안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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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의 대추도 저절로 영글지 않습니다

천둥 몇 개, 땡볕 두어 달의 역경 끝에 익어 갑니다

하물며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베트남을 통일한 호치민의 어록에 이런 대목이 있다고 합니다

 

'절구공이 아래서 짓이겨지는 쌀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그러나 수없이 두들김을 당한 다음에는 목화처럼 하얗게 쏟아진다

이 세상 인간사도 때로는 이와 같아서 역경이 사람을 빛나는 옥으로 바꾸어 놓는다.'

 

맹렬하던 더위도 제법 주춤거리고 있습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처럼 이글거리지만 곧 가을이 올 것입니다

장글거리는 태양에 맞서 제 몫을 살아온 것들만이

제 맛을 내는 열매를 튼실하게 영글어 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