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강의 ] 여행 연습1 (봄, 이른 아침) |
2. 여행 연습. 1
지금부터 우리는 그대로 보기와 빗대어 보기를 바탕으로 하여 한 편의 이야기를 엮어 보거나, 한 폭의 그림을 그려 보거나, 한
묶음의 생각을 털어놓는 연습을 해 봅시다. 이것이 상상하여 보기, 시라는 열매를 맺게 하는 꽃을 피우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짧은 시를 써 봅시다.
이제, 상상력이라는 카메라 하나 짊어지고, 무지개 빛 마음이 머무는 곳에 렌즈를 대고 사진을 찍어 봅시다. 무지개 빛 마음이
란 아름다운 마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지개에는 수많은 삶의 빛깔들이 굴절되어 있습니다. 삶의 기쁨,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아픔, 분노 등 모든 빛깔들이 스며 있습니다. 그래서 무지개 빛 마음은 슬픔을 슬픔으로, 기쁨을 기쁨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마음입니다.
렌즈는 대상을 보는 당신의 눈, 즉 심미안을 말합니다. 필름은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굴절되는 대로 사진
을 찍으면 됩니다. 마음의 굴절은 그대로 보기, 빗대어 보기, 상상하여 보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대상인식입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마음의 굴절을 이루게 하는 직관입니다. 직관은 대상에 대해 순간적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직관이 시의 씨앗입니다. 그 씨앗이 트면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다시 더욱 살진 씨앗으로 돌아갑니다. 이 씨앗
도 잘 정리하면 짧고 좋은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직관의 주체, 즉 인식의 주체는 누구일까요? 꽃이 웃고 있다면, 누구를 보고 웃을까요? 새가 울고 있다면, 누구를 보고 울까요?
바로 당신입니다. 바람이 불어옵니다. 누구에게 불어오는 걸까요? 바로 당신입니다. 모든 인식의 주체는 바로 당신입니다. 이
때의 당신이 시적 자아입니다.
걸음을 옮깁시다, 그러나 서두르지 말고. 지금부터 당신은 만나는 대상에 대해 순간적으로 느끼고, 생각한 바를 정리하는 연습
을 해 보는 것입니다. 시의 씨앗, 즉 직관을 모아 보자는 것입니다.
* 길
길을 걸었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당신이 느끼고, 생각한 것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것이 그대로 보기입니다. 즉 대상인식입니다. 인식한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정리한다는 것은 당신의 행위, 느낌, 생각을 간추린다는 말입니다. 될 수 있으면 짧게, 순서에 맞게 한 편의 이야기, 한 폭의 그
림, 한 묶음의 생각으로 정리해 봅시다. 기본은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시에서의 그림이나 생각도 결국에는 문자에 의한 표현이
므로, 줄거리를 만들어 정리해 보자는 것입니다.
앞에서 줄거리를 엮을 때는 서경문, 서사문, 기행문, 반성문, 고백문, 회고문, 기도문, 서간문, 권유문, 광고문, 설명문, 논설문
등등의 틀을 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줄거리를 엮어 정리해 봅시다.
길을 걷고 있는데, 아무도 없어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여기까지가 인식 내용 정리입니다. 서사문의 틀을 빌렸지요? 앞에서 줄거리를 엮기 위해서는 소설의 구성 3요소를 빌리자고
하였습니다.
'길'이 배경이고, '나'는 인물이고, 나머지의 느낌과 생각, '걷고 있는데' '기분이 좋았다'를 사건이라고 생각합시다.
시도 결국에는 삶의 이야기라 했습니다. 이것은 압축되어 소설과 모습을 달리하지만, 시의 내용을 유추해 보면, 거기에는 한 편
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당신은 불안하실 겁니다. 이런 것도 시가 될 수 있느냐고. 그러나 이런 것도 한 편의 좋은 시가 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해 해 봅시다. 생략할 수 있는 것은 생략해 봅시다. 이것이 압축입니다.
길을 걷고 있는데, 아무도 없어 너무 좋았다.
이것을 재정리라고 이름을 붙여 봅시다. 시에서 퇴고란 모든 제작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재정리도 퇴고의 한 방법입
니다. 재정리를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시의 틀이 저절로 짜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을 다듬어서 행을 구분하여 봅시다. 이것이 구성입니다. 정리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연과 행을 구분하여 시의 틀을 짜는
것입니다.
길을 걷고 있는데
아무도 없어
너무 좋았다.
어디인가 어울리지 않고 흥이 나지 않지요? 그것은 행과 행의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았
다는 것은 운율이 고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낭송하기에 좋지 않다는 말이지요.
시라고 하기에는 너무 유치한 것 같지요? 염려하지 마십시오. 모든 예술은 당신이 바로, 유치하다고 생각한데에서 출발했으니
까. 유치하다는 것은 다르게 생각하면, 거짓이 없다는 말과 통할 수 있으니까. 예술의 시작은 우리가 흔히, 천하게 이르는 말,
'째'가 '멋'으로 변하여 발전한 것입니다.
행의 균형을 맞추어 운율을 골라 봅시다.
길을 걸었네.
아무도 없어
너무 좋았네
'걷고 있는데'를 '걸었네'로 압축했습니다. 이렇게 뺄 것은 빼고, 넣을 것은 넣고, 줄일 것은 줄이는 것, 이것이 퇴고입니다. 퇴
고는 시에 따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짧은 시는 마음으로 여러 번 낭송해 보면, 곧 고칠 수 있습니
다. 아니, 당신의 입으로 직접 낭송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러면 마음도 함께 따라 읽을 테니까.
그래도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아쉬움이 남지요? 아직 완결된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길을 계속 걸으십시오.
이것이 시의 여행. 혼자 걷는 동안, 만나는 대상과 가슴에 밀려오는 생각들이 다음에 이어질 시어와 시구를 마련해 줍니다.
당신은 지금, 길을 걷고 있습니다. 가슴에 안겨 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새들이 노래를 부르지요? 풀꽃들이 웃지요? 그대로 듣
고, 그대로 보며 걸으십시오. 그러다 보면, 새도, 풀꽃도, 당신도 사라집니다. 이것이 무아지경.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경지
입니다. 기분이 너무 좋지요?
방금 느끼고 생각한 것을 정리해 봅시다.
새들의 노래를 듣고, 풀꽃들의 웃음을 보며 걸으니, 나마저 사라져 너무 좋았다.
이것을 앞 시구의 운율에 맞춰 다듬어 봅시다.
새들의 노래
풀꽃들의 웃음
나마저 사라져
너무 좋았네.
앞의 시구와 이어 봅시다.
길을 걸었네.
아무도 없어
너무 좋았네.
새들의 노래
풀꽃들의 웃음
나마저 사라져
너무 좋았네.
1연과 3연의 '너무'가 동어 반복이지요? 3연의 '너무'를 '더욱'으로 바꿔 옮기면 어떨까요?
길을 걸었네.
아무도 없어
너무 좋았네.
새들의 노래
풀꽃들의 웃음
나마저 사라져
더욱 좋았네.
'그대로 보기'를 바탕으로 하여 한 편의 시를 완성했습니다. 표현기교는 영탄법. '너무 좋았네' '더욱 좋았네.'는 시적 자아의 즐
거운 마음을 감탄조로 드러낸 것입니다. 표현 방법은 1연과 3연은 당신의 마음을 당신에게 털어놓은 독백적 진술, 2연은 서경
적 묘사입니다.
어떻습니까? 짧지만 그런 대로 운율이 맞아 흥이 나지 않습니까? 흥이 나지 않으면 자꾸 읽어 보십시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다듬어져 운율에 맞을 테니까.
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하나의 이야기도 다듬으면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시는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이 아닙니다. 들판에 있는 누구나 딸 수 있는 과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는 평범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작업일
뿐입니다.
위에서, 시의 형식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시의 형식은 행과 연을 말합니다.
행은 시인의 호흡에 따라 나누어진 시에서의 한 줄, 연은 리듬에 따라, 의미(내용)에 따라, 이미지(심상) 변화에 따라 나누는 시
에서의 단락을 말합니다.
형식에 맞추었으면, 다음은 운율을 골라야 합니다. 운율은 시에서의 운과 율을 말합니다. 운은 정해진 위치에 같은 소리나 비슷
한 소리가 나는 시어를 배치하는 소리의 규칙성을 말하고, 율은 시어들끼리 어울리는 가락의 규칙성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의 시에서는 운보다 율이 중시되고 있습니다.
우리말의 율(가락)에는 음수율과 음보율이 중심이 됩니다. 음수율은 시어들의 규칙적인 글자수의 어울림을 말하는데 3·4조, 4·
4조, 7·5조가 우리나라의 시에 가장 많이 나타납니다. 음보율은 시를 낭송할 때, 끊어 읽는 반복적인 가락의 어울림으로 2음보,
3음보, 4음보가 있습니다. 이것을 규칙적으로 지키는 것 외형률입니다.
그러나 이것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낭송하기가 좋으면 운율이 고른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오는 가운데 자기도 모르
게 우리의 정서에 맞는 가락을 익히게 되고, 나름대로의 가락을 가지게 됩니다. 거기에 맞으면 운율이 맞는 것입니다. 이것을
내재율이라고 합니다.
다시 연습을 시작합시다.
* 봄
봄이 왔습니다. 개나리꽃이 웃고 있습니다. 어디에선가 뻐꾸기가 우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것이 그대로 보기. 당신이 당신에게 질문해 봅시다.
당신은 지금, 웃겠습니까, 울겠습니까?
빨리 대답해 보십시오. 시간이 걸리면 빗나갑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다.
당신의 심정을 그대로 털어놓았습니다. 이젠, 당신이 처한 상황에 당신의 대답을 섞어 정리해 봅시다.
봄이 와서 개나리는 웃고 있고, 뻐꾸기는 울고 있어서 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다.
동어 반복이나 의미의 중복을 피하는 것이 생략의 기본. 생략할 수 있는 것을 생략하여 봅시다.
개나리는 웃고, 뻐꾸기는 울고 있어서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겠다.
다시 한 번, 다듬어서 정리하여 행을 구분해 봅시다.
개나리는 웃고
뻐꾸기는 울고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봄의 정서가 그대로 드러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개나리는 웃고, 뻐꾸기는 울까요? 그 원인은 당신 가슴 안에 있습니다.
당신의 가슴속에 웃고 싶은 맘과 울고 싶은 맘이 함께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개나리는 웃게 했고, 뻐꾸기는 울
게 했습니다. 이것이 감정이입,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인식하는 대상에 옮겨 놓는 것을 말합니다.
표현 방법은 1, 2행은 봄의 풍경을 요약적으로 그려낸 서경적 묘사, 3, 4행은 당신의 마음을 고백한 독백적 진술입니다.
표현기교는 의인법과 대조법이 사용되었습니다. 의인법은 대상 속에 생명을 불어넣음으로써 생동감을 주는 비유법, 대조법은
상반된 시구를 대비시켜 의미를 더욱 강조하는 강조법입니다.
*이른 아침
이른 아침, 당신은 숲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슬에 몸이 점점 젖어옵니다. 그런데 새들이 자꾸만 울어댑니다.
그렇다면, 새들에게 한 마디 해야겠지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몸이 더 젖기 전에 어서 말해 보십시오.
새들아, 울지 말아라. 벌써, 이슬에 몸이 흠뻑 젖었단다.
행만 구분하면, 시가 됩니다.
새들아, 울지 말아라.
벌써, 이슬에
몸이 흠뻑 젖었단다.
표현기교는 의인법과 돈호법. 돈호법은 사물이나 사람의 이름을 불러 정서적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표현 기교입니다. 표현 방법
은 동조, 참여, 각성을 청하는 권유적 진술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 어젯밤 꿈에 슬픈 꿈을 꾼 모양이군요? 이슬에 몸이 젖고 새소리에 맘이 젖는 걸 보니.
*부엉이
달밤의 숲 속. 부엉이 한 마리가 눈을 부릅뜨고 나무 위에 앉아 있습니다.
그림 속의 풍경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다음은 상상하기. 상상하기의 열쇠는 질문이지요?
지금, 부엉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눈을 부릅뜨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답이 떠오르지 않으면 부엉이가 되어 '부엉'하고 울어 보십시오. 귀
신들마저 천리 밖으로 도망을 칠 테니까. 이제 알았지요, 부엉이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 이유가 숲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것을.
정리해 봅시다.
달밤에 부엉이가 눈을 부릅뜨고 숲을 지키고 있다.
'달밤'이 배경이고 '부엉이'가 인물이고 '눈을 부릅뜨고 숲을 지키고 있다'가 사건입니다. 시의 형식에 맞추면 금방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옮겨 봅시다.
달밤에 부엉이가
혼자서 눈을 부릅뜨고
숲을 지키고 있다.
낭송해 봅시다.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지요? 운율이 고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어를 골라야겠지요?
달이 뜨는 밤에는
부엉이 혼자서
숲을 지킨다.
서경적 묘사와 해석적 진술이 하나로 어우러졌지요? 서경적 묘사란 어떤 풍경을 눈에 보이게 그려 놓는 것을 말합니다. 해석적
진술은 대상에 대한 인식 주체의 이해, 해석, 비판, 판단을 드러낸 진술입니다. 묘사와 진술은 이처럼 하나로 녹아 어우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정말, 지금 부엉이는 숲을 지키고 있을까요? 그런데 부엉이를 지켜보고 있는 당신은 지금 무엇을 지키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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