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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의 수업/문학과 관련하여

[스크랩] 드라마펙토리의 <몽타주> 공연비평

by 拏俐♡나리 2009. 11. 15.

〔공연 비평〕

                      폭력의 트라우마에 대한 심리적 통찰

                                  - 극 연구소 드라마팩토리의〈몽타주〉

 

 

                                                                                                                 연극평론가 / 김 문 홍

웰 메이드 플레이를 지향하는 드라마팩토리

 

 19세기 중엽 이후 대중들은 연극과 영화를 선택할 때 ‘잘 짜여진 플롯’으로서의 대중적 작품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래서 연극 대본을 쓰는 사람들은 관객들의 이러한 이야기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교묘한 트릭과 복선 등의 기법으로 서사구조를 보다 다채롭게 하는 플롯의 작품을 생산하기에 이른다. 대부분의 일반 관객들은 영화와 연극을 볼 때 표현 양식이나 주제로서의 현실인식보다는 이야기의 드라마적 구조에 몰입하고 환호하게 된다. 연극에서는 이러한 류의 작품을 ‘웰 메이드 플레이(well made play)'라고 부르게 되었다.

부산지역에서도 몇몇 젊은 연극인들이 이러한 웰 메이드 플레이의 연극을 지향하기 위해〈드라마팩토리〉라는 작품 공방을 차리게 되었는데, 이들의 그 첫 결실이 심리 스릴러극〈몽타주〉(김준영 작, 김세환 연출, 2009. 5. 15 - 6. 28, 용천지랄 소극장)로 첫 선을 보이게 되었다. 그런 의도의 결실로 이룩된 공연인 만큼 이번 작품은 텍스트 자체의 짜임새와 연출의 표현적 에너지,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력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이야기 구조를 좋아하는 대중적 취향에 부응하고 있으면서도, 너무 이야기의 구조와 표현에만 치중한 관계로 관객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가로서의 주제의식이 불분명하다. 즉, 폭력의 트라우마가 서로 맞물려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남긴다는 데에 대한 사회적 통찰로서의 메시지가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두 개의 얼개로 구성되어 있다. 연쇄 살인범 유홍준(김준영 분)의 살인 행각과 몽타주 화가인 서정미(임호영 분)의 정신적 고통으로서의 지리멸렬한 삶이 바로 그것이다. 유홍준의 살인 행각과 서정미의 지리멸렬한 정신적 외상으로서의 스트레스의 근본적 모티브는 가정 폭력이다. 연쇄 살인범 유홍준의 대사회적 광기 표출도 폭력의 후유증이며, 서정미의 몽타주에 대한 집착과 내면적 갈등 역시 아버지에 의한 성폭력의 후유증에 기인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공연은 이 두 사람의 광기와 집착에 초점을 두고 심리적 분석에 주안점을 두어야함에도, 이는 소홀한 채 두 사람의 현상적(가시적)인 사건에만 집착하는 아쉬움을 노출하고 있다.

 

연출의 다이내믹한 에너지와 연기력의 박진감

 

 이 작품은 연출의 에너지와 연기력의 리듬과 템포에 있어서는 심리 스릴러극의 형태에 걸맞게 역동적인 힘을 발산하고 있다. 몽타주 그리기에 집착하는 임호영의 연기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서늘하여 심리적 빛깔로서의 지리멸렬한 일상을 차분하고 명확한 발성으로 섬세하게 표출하고 있다. 연쇄 살인범 유홍준을 연기하는 김준영은 병적인 사이코의 근성을 섬찟한 표정 연기와 비웃적거리는 대사로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그리고 조금 과장되긴 하지만 순박하고 투박한 심성과 서정미에 대한 연모의 감정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강력계 조형사(금정원 분), 또한 누이동생 서정미의 지리멸렬한 일상적 삶에 대한 연민과 과거 행적에 대한 죄책감으로서의 복합적인 감정을 우울한 이미지로 표현하는 오빠(신현규 분)의 연기는 모두 나름대로 섬세함을 지니고 있어 관객들의 시선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시적인 외형적 연기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내면적 심리의 표출에 있어서는 아쉬움을 많이 남기고 있다. 몽타주 화가 서정미는 아버지에 의한 성폭력과 죽음에 대한 의문으로 점철된 과거의 악몽에 대한 심리적 갈등을 극적 전개에 따라 증폭시켜 표현해 나가야 하는 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오빠가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보다 섬세한 표정연기와 마임이 필요하며, 극적 전개에 따라 심리적 갈등이 점층적으로 가시화되는 치밀한 연기 전략이 필요할 것 같다. 연쇄 살인범 유홍준을 연기하는 김준영은 범죄자로서의 섬찟한 표정 연기와 마임에는 섬세함을 보이고 있지만, 가정 폭력에 대한 정신적 외상 스트레스와 대사회적 발언으로서의 공격적 발언에 있어서는 역시 역부족이다. 강력계 조형사와 오빠를 수갑에 채워놓고 대사회적 공격 성향을 내보이는 장면에서는 사이코적인 범죄자의 행각과 자신의 과거에 대한 심리적 갈등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복합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오빠 역의 신현규 역시 아버지를 살해한 과거 행적에 대한 죄책감과 공포, 그리고 누이동생에 대한 연민으로서의 복합적인 감정을 섬세한 마임과 표정 연기로 보여주어야 함에도 아직은 역부족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이동생을 방문할 때마다 동생을 대하는 표정과 마임이 차별화되어야 할 것이며,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임을 암시하며 동생에게 몽타주를 그려줄 것을 부탁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보다 섬세한 마임과 표정연기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강력계 조형사를 연기하는 금정원은 서정미에 대한 연모의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에만 치중하지 말고, 형사라는 직업 근성으로서의 보다 치밀한 연기 표현에도 세심한 연기 전략이 필요할 것 같다.

 

드라마의 외피도 중요하지만 내면도 중요하다

 

 이 작품은 심리 스릴러를 표방한 만큼 드라마로서의 외적인 사건과 행위의 표현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그러한 사건과 행위를 있게 한 인물들의 내면적 심리 상황의 표현에 더 역점을 두어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사회적 행각을 일삼는 연쇄 살인범 유홍준의 가정 폭력과 대사회적인 공격 성향, 그리고 서정미의 지리멸렬한 일상과 과거의 악몽에 대한 심리적 갈등의 모티브가 되는 성폭력에 보다 더 명확한 표현이 필요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 살인범 유홍준의 트라우마는 무대 위에 가시적으로 형상화되지 않고 그의 대사를 통해서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서정미의 트라우마 역시 무대 위에 가시화되지 않고 녹음으로 들려주는 것으로 가볍게 처리하고 있다. 연쇄 살인범 유홍준의 경우에는 무대 위에 형상화할 것 까지는 없다고 하더라도 사이코적인 범죄자의 표현과 대사회적 공격 성향으로서의 내면적 갈등의 표출을 섬세한 연기 전략으로 구분시켜 표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문제는 몽타주 화가 서정미의 경우이다. 이 작품의 제목 ‘몽타주’가 암시하는 것은 연쇄 살인범 유홍준보다는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의 몽타주에 더 치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정미가 아버지에 의해 성폭력을 당하고 아버지를 살해하는 오빠의 행위는 녹음으로 처리하는 것보다는 하나의 장면으로 형상화하여 보여주는 것이 주제 표출에 더 적확할 것 같다. 물론 이것을 장면화 하여 보여주면 사건의 윤곽이 금세 드러나 긴장감을 감소시킬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한 번쯤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드라마는 보여주는 것으로서의 외피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하는 인물들의 내면적 풍경도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 즉, 심리 스릴러는 가시적인 모양새보다는 보이지 않는 내면의 심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완벽한 드라마의 짜임새를 위해 연구하는 젊은 연극인들의 진지한 노력,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결실이 관객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가히 성공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가지 조연하고 싶은 점은 ‘웰 메이드 플레이’로서의 드라마의 짜임새에만 세공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세공적 노력을 통해서 관객들의 의식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연극의 근본적 철학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연극은 대중에 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을 연극의 철학적 자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극 연구소〈드라마팩토리〉의 다음 작업에 기대를 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출처 : summergarden45
글쓴이 : 김문홍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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