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연구논문을 올릴 수 있는 방을 새롭게 개설해주신 운영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이 논문은 저의 대학원 학위논문입니다.
저는 요즘 이 논문을 바탕으로 '윤동주의 시와 생애를 소설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책 제목은 <소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칭)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I. 서 론
1. 연구사 검토 및 문제제기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가 나온 이래 윤동주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다각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 연구가 실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단선적인 구분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그래도 그 동안의 연구 결과를 고찰해 보면 1) 시의 성격 연구, 2) 내면적 갈등(시정신) 연구, 3) 전기적 연구, 4) 기독교적 연구, 5) 기타 연구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시의 성격 연구>로 저항성 여부이다. 초기에는 역사적 암흑기를 반짝이는 별처럼 살다간 그의 생애에 힘입어 자연스럽게 저항시인, 민족시인으로 자리잡았다가 吳世榮이 '윤동주 시는 과연 저항시인가' 라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한때 뜨거운 쟁점이 되기도 했다. 어쨌든 이 문제에 크게 관심을 가진 학자로는 白鐵, 金允植, 鄭漢模, 金宇鐘, 李尙斐, 洪起三, 任軒永, 金容稷, 全圭泰, 吳世榮, 金烈圭, 박삼균 등을 들 수 있다.
두번째로 <내면적 갈등(또는 시정신) 연구>로, 高錫珪는 "거의 표백적인 인간상태와 蕪雜한 상실을 비쳐내던 말세적 공백에 있어서 불후한 명맥을 감당하는 유일한 정신群"이라고 그 역사적 의의를 말한 후,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하지만 나름대로 윤동주 시의 정신 구도를 파악하여 보여준다. 崔洪奎는 윤동주의 시세계를 '情景的 양상, 어둠의 양상, 죽음의 양상, 긍정의 양상'으로 나누어 이 네가지 양상의 전개 논리를 추구하고 있고, 김흥규는 '화해의 세계 - 갈등의 세계 - 미완의 緊張'이라는 보다 정밀한 변증법적인 논리로 발전시키고 있다. 申東旭은 윤동주의 시세계를 1940년을 전후하여 양분하고 전반부를 '외로움을 통한 자아 발견'이라 하고 후반부를 '부끄러움의 시학'이라 하였다. 그리고 '서정적 자아와 세계의 불협화'현상을 윤동주 시의 특질로 보았다. 金禹昌은 윤동주의 양심이 외부적 도덕률에 유도되어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끊임없는 내적 성찰에서 얻어진 것이라 하고 이러한 명징한 자아의식은 한편으로는 나르시시즘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실존적 자기 확인행위인데 이러한 바탕에서의 양심이란 가혹한 시대적 상황에서 비극적 행동으로 귀결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윤동주가 추구한 심미적, 윤리적 완성은 궁극적으로 실천과 행동으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당대의 사회가 넓은 의미에서 자기 완성의 추구를 허용하지 아니하기 때문이고 그 결과 현상타파를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윤동주는 직접적인 의미의 애국심과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 사이에 갈등을 느낀 경우가 종종 있고 이것이 그의 시의 주요 모티프라고 하였다. 崔東鎬는 윤동주의 시적 의식을 내향적 의식과 외향적 의식으로 나누고 전자는 본절적이며 자아내적 탐구의 성향을 갖는 것이며 후자는 내향적 의식을 극화시켜 시대적 의미의 추구와 새로운 세계에로의 동경이라고 하였다. 이 두 가지 의식은 하나의 지향점으로 통합되는 변모과정을 보여주는데, 그 지향성의 통합을 보여주는 작품이 '서시'라 하였다. 그러나 윤동주의 이러한 통합적 지향성은 다시 내향적 의식으로 귀결되는데, 이러한 결론적인 의식을 보여주는 작품이 '참회록'이라고 하였다. 李南昊는 윤동주의 시는 아름다운 화해와 사랑의 세계를 지향하는 본질적 자아와 시대적 양심을 실천해야 한다는 현실적 자아가 갈등을 일으키다가 결국 그 두 자아가 통합되어 더 큰 하나의 자아로 탄생하는 과정의 기록이라고 보고 있다.
세번째 <전기적 연구>를 들 수 있다. 1949년 8월 30일 자유신문에 실린 유영의 '내가 잃은 삼재'를 필두로 윤영춘, 정병욱, 윤일주 등 실로 많은 사람들이 윤동주에 얽힌 인상기 내지 회고담을 쏟아 놓았다. 1968년 정음사 간행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증보판)에서도 그런 자리를 마련했고, 1973년에는 {크리스챤 문학}에서 윤동주 특집을 꾸미면서, 그리고 1976년 {나라사랑} 여름호에서도 전권을 윤동주 연구와 일화로 채웠다. 뒤이어 평전도 잇달아 나왔는데, 이건청 편저 {윤동주 평전}(문학세계사, 1981)을 비롯하여, 권일송의 윤동주 평전(민예사, 1984),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열음사, 1988), 김수복의 {윤동주-별의 노래} (한림원, 1995) 등이 그것이다.
네번째로 <기독교적 연구>이다. 물론 초기부터 기독교적인 접근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이 단편적 언급이나 피상적 연구에 그치고 있어 아쉬움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다가 1980년대 접어들면서 본적격인 기독교적 연구가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하는데, 곽동훈, 박이도, 정호승, 허규, 채현주, 박춘덕, 이영섭 등의 연구가 그것이다.
다섯번째 <기타 연구>로 김열규와 마광수의 연구를 들 수 있다. 김열규는 윤동주의 시가 자아를 회복하지 못한 '오티즘'속에서 자아분열과 作爲體驗, 그리고 離人症을 드러내고 있다고 하면서 거의 유일하게 윤동주의 시를 전적으로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고, 마광수는 윤동주 시에 나타난 상징적 표현, 즉 자연표상으로서의 상징, 시대 및 역사적 상황의 상징, 내적 갈등과 소외의식의 상징, 사랑과 연민의 상징, 종교적 표상으로의 상징 등 다섯 가지의 상징 세계를 중심으로 문학적 의의를 구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색다르다.
그 동안 쏟아져 나온 수십, 수백 편의 연구 논문과 회고담을 통해, 윤동주라는 한낱 이름없는 문학청년이 한국 문학사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위치에까지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고, 그 시세계도 비교적 속속들이 밝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것은 왜 일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윤동주-인용자 주)에 나타난 신앙적인 깊이가 별로 논의되지 않는 것이 좀 이상하게 생각되곤 했었다"는 문익환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윤동주 시 연구에 있어서 기독교 신앙에 관한 연구는 필수적이다. 그의 시 전반에 걸쳐 있는 사상적 배경은 거의 기독교 신앙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어떤 의미에서 윤동주 시는 信仰的 告白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윤동주 시를 신앙적 고백의 기록이라고 보는 관점은 그동안 이루어진 연구 업적의 미비한 요소를 보충하고 윤동주 詩世界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영섭의 이같은 지적처럼, 윤동주의 詩와 삶에 있어 그 핵심은 信仰이다. 적어도 윤동주의 詩는 그의 삶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고, 그의 삶은 다시 그의 신앙을 제쳐놓고 얘기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따라서 그의 시세계와 삶의 정체를 낱낱이 밝힐 수 있는 열쇠도 신앙이라고 여겨진다. 신앙이란 '개인이나 단체가 확고하게 믿고 움직이는 삶의 방향이며 그것에 우리의 삶을 위탁하는 것으로, 그것은 인간의 삶에 목표를 형성해 주며, 또 모든 사람이 목표를 향하여 움직여 삶을 하나로 일치시켜 우주 공동체를 형성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적 신앙으로 접근하면 마치 문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아닌 것으로 생각하여 피해가거나, 더러 기독교적인 잣대를 들었다 하더라도 윤동주 詩의 흐름을 꿰뚫지 못하고 그저 기독교적 요소 특성 몇 개를 줍고 마는데 그치고 있다. 다시 말해 기독교 사상을 작품 해석의 보조적 수단으로 이용하거나 단편적인 기독교 교리를 가지고 작품을 분석하다 보니 신앙적 변모 양상이나 美意識이 看過되는 愚를 범하고 말았다.
윤동주는 정상적인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신앙적 성장기, 그리고 회의 방황기를 거쳐 신앙적 성숙기로 접어들었다. 따라서 그는 자연스럽게 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기독교적 세계관 안에서 사유하고 판단하며 행동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시는 신앙적 고백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그의 정신세계에는 기독교적 신앙이 깊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의식의 흐름에 입각하여 윤동주 시의 변모과정을 고찰할 때만이 윤동주의 시세계가 제대로 규명되리라고 믿는다.
T.S. Eliot는 '여러 작품들이 이루는 전체 시를 하나의 단일한 장시로 볼 필요가 있는 시인이 있다'고 했는데, 윤동주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고 보여진다. 윤동주의 시 가운데에는 물론 예술성을 목표로 씌어진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그것 못지않게 자신의 내적인 심리 상태를 진실하게 토로하고 있다. 다시말해 형식(언어적 기교)보다는 내용(사상)에 충실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그의 시는 개인적 고뇌의 기록인 셈이다. 그리고 그는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거의 詩作날짜를 적어놓고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그의 시는 "日記詩"로도 불린다.
2. 연구 목적 및 연구 방법
본 論文의 目的은 윤동주 시의 흐름을 신앙적으로 고찰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윤동주의 의식세계가 어떻게 작품에 투영되어 있는가를 밝혀내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의 시를 지배하는 갈등의 논리와 시적 변모 과정, 그리고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자아상도 드러날 것이다.
이를 위해 本考에서는 윤동주의 시세계를 그의 삶과 동일선상에 놓고 기독교적 의식을 주된 열쇠로 하여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분석을 시도할 것이다. 가급적 창작일자 순으로 배열하여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가고, 또 어떤 모습으로 변모되어 가는지 그 과정을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면서 탐색하고자 한다. 또한 최대한의 객관성 확보를 위해 童詩부터 마지막 작품인 [쉽게 씌어진 시]까지 거의 모든 중요 작품들을 전부 다루고, 역시 論者의 편의에 따라 취사선택되는 주관성을 막기 위해 시의 部分이 아닌 全文을 실을 것이다.
윤동주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詩作날짜를 기록해 두고 있다. 그럼 윤동주는 왜 시작날짜를 밝혀 놓았을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의 詩가 내면세계의 기록이라는 점이다. 윤동주는 일기를 쓰듯 시를 썼다. 따라서 그의 시는 자기성찰적 경향이 강하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자기 시의 성향이나 수준이 어떻게 변모되고 있는가를 나중에 쉽게 조감하기 위해서이다. 윤동주는 童詩에서 시작, 습작기를 거쳐 상당한 수준에 이르는 시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이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그리고 아주 열심히 문학수업을 했음을 그의 생애가 웅변해주고 있다. 한용운이 '以道得詩'한 시인이라면 윤동주는 '以詩得道'한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끊임없이 그의 의식세계가 변화되어감에 따라 그의 시세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김영철의 지적처럼 윤동주의 시는 내면적 자아에서 사회적, 역사적 자아로 변전되는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 윤동주의 시는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고 있어 부분부분 보면 각각 다른 세계를 노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조감해보면 일관적인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즉 그의 시는 목표와 지향점이 있다. 앞에서 윤동주의 시는 그의 삶의 기록이고 그의 삶의 핵심은 기독교적 신앙이라고 말했다. 윤동주가 목표로 삼은 삶의 모델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이다. 모든 크리스챤이 그렇겠지만 특히 신앙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그리스도의 생애를 가장 이상적인 삶의 형태로 보고 부단히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려는 노력을 경주한다. 윤동주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도 무던히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의 삶은 하나의 聖化의 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윤동주는 신앙적 성장기를 거쳐 회의 방황기를 맞이했고, 그러나 마침내 그 위기를 딛고 신앙적 성숙기로 접어든다. 그러한 그의 생애가 고스란히 그의 시 속에 담겨 있다. 이것을 파악하는데 그의 시작날짜는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 어쩌면 윤동주는 이것을 의식하고 시작날짜를 적어 두었는지 모른다.
이처럼 윤동주에게 있어 시는 일기와 같은 것이었다. 그때 그때의 삶을 반성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는 도정에서 그의 시는 나온 것이다. '윤동주에게 있어 시와 삶은 언제나 동질적 선상에서 수용되고 추구된 것이다. 더군다나 그의 옥사는 시와 삶이라는 희귀한 국면을 하나의 역사적 완성물로 결정지어 놓았다. 따라서 그의 시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 시대나 삶의 측면을 도외시하는 형식주의적 방법이나 속류 구조주의적 방법은 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의 시는 숙명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 시대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평에서 의도의 오류라고 부르는 어리석은 실수를 회피해야 한다. "이것으로 작가는 무엇을 말했는가"라는 질문은 언제나 불합리한 것이다. 첫째, 우리는 그것을 결코 알 수 없다. 둘째, 작가가 그것을 알고 있었다고 가정할 이유가 없다. 셋째, 그 질문은 상상적 저서와 논증적 저서를 혼동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노드럽 프라이의 지적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윤동주 시 연구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견해로 보인다. 오히려 허쉬의 다음의 견해가 윤동주 시에 접근하는데 훨씬 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무관련설을 주장하는 학문적 회의주의는 허다한 혼란을 가져 왔을 뿐이다. 일단 자신의 텍스트 의미의 결정자로서의 저자가 사정없이 추방당하자, 한 해석의 타당성을 판단할 적합한 원칙이 없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중략) 의미의 결정자로서의 원래 작가를 추방하는 것은 한 해석에 타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강력한 규범적 원칙을 거부한 것이다. 텍스트의 의미가 작가의 의미가 아니라면 어떠한 해석도 그 텍스트의 의미에 부합할 수 없을 것인데, 그 텍스트는 어떤 결정된 또는 결정 가능한 의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는 절대주의 분석 비평의 영향으로 역사라든가 시인의 생애, 의도를 비평에 개입시키면 잘못된 것으로 알아 왔다. 그러나 적어도 윤동주를 논하는 자리에서는 절대주의 분석 비평의 논리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어진다. 그것은 단순하게 역사와 인간을 배제하는 문학론이 知的 靜寂主義에 떨어질 공산을 가진다는 경계심만으로가 아니다. 솔직히 윤동주의 경우 그의 시는 생활이며 현실 자체요, 그 역 또한 참이다.
시인은 개성을 지닌 개인이다. 따라서 세계를 보는 관점과 해석이 각양각색일 수 밖에 없다. 대체로 문학작품에는 시인의 개성적인 체험의 세계가 반영되기 마련인데, 이러한 개성, 곧 창의성은 오히려 작품의 예술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다. 윤동주는 그 어느 시인보다도 체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형상화했다. 따라서 그의 시 연구에는 그가 살았던 사회와 시대상황 등 전기적 사실 파악이 필수적이다. '윤동주의 경우처럼 그 작품과 삶과 지조가 완전히 구합일체화(具合一體化)된 예는 극히 드물다. 시와 사상, 사유와 지조, 그리고 시와 생애가 촌분의 괴리도 있을 수 없이, 그의 서정 정신과 저항 정신의 한 줄기 殉節에의 희생으로 일철화(一轍化)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본 연구에서도 윤동주의 성장 배경, 家系, 생활환경, 학교생활, 교우관계, 취미 등이 작품 창작에 영향을 주었다는 전제 아래 접근을 시도할 것이다. 특히 종교와 사상에 관해 면밀히 조사, 분석하여 그 토대 위에서 윤동주의 심리상태를 추리하면서 그가 창작한 작품의 의도를 파악해 나가고자 한다. 그러면 그의 세계관이 어떠하였으며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밝혀질 것이다.
* 이 논문은 저의 대학원 학위논문입니다.
저는 요즘 이 논문을 바탕으로 '윤동주의 시와 생애를 소설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책 제목은 <소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칭)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I. 서 론
1. 연구사 검토 및 문제제기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가 나온 이래 윤동주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다각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 연구가 실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단선적인 구분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그래도 그 동안의 연구 결과를 고찰해 보면 1) 시의 성격 연구, 2) 내면적 갈등(시정신) 연구, 3) 전기적 연구, 4) 기독교적 연구, 5) 기타 연구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시의 성격 연구>로 저항성 여부이다. 초기에는 역사적 암흑기를 반짝이는 별처럼 살다간 그의 생애에 힘입어 자연스럽게 저항시인, 민족시인으로 자리잡았다가 吳世榮이 '윤동주 시는 과연 저항시인가' 라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한때 뜨거운 쟁점이 되기도 했다. 어쨌든 이 문제에 크게 관심을 가진 학자로는 白鐵, 金允植, 鄭漢模, 金宇鐘, 李尙斐, 洪起三, 任軒永, 金容稷, 全圭泰, 吳世榮, 金烈圭, 박삼균 등을 들 수 있다.
두번째로 <내면적 갈등(또는 시정신) 연구>로, 高錫珪는 "거의 표백적인 인간상태와 蕪雜한 상실을 비쳐내던 말세적 공백에 있어서 불후한 명맥을 감당하는 유일한 정신群"이라고 그 역사적 의의를 말한 후,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하지만 나름대로 윤동주 시의 정신 구도를 파악하여 보여준다. 崔洪奎는 윤동주의 시세계를 '情景的 양상, 어둠의 양상, 죽음의 양상, 긍정의 양상'으로 나누어 이 네가지 양상의 전개 논리를 추구하고 있고, 김흥규는 '화해의 세계 - 갈등의 세계 - 미완의 緊張'이라는 보다 정밀한 변증법적인 논리로 발전시키고 있다. 申東旭은 윤동주의 시세계를 1940년을 전후하여 양분하고 전반부를 '외로움을 통한 자아 발견'이라 하고 후반부를 '부끄러움의 시학'이라 하였다. 그리고 '서정적 자아와 세계의 불협화'현상을 윤동주 시의 특질로 보았다. 金禹昌은 윤동주의 양심이 외부적 도덕률에 유도되어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끊임없는 내적 성찰에서 얻어진 것이라 하고 이러한 명징한 자아의식은 한편으로는 나르시시즘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실존적 자기 확인행위인데 이러한 바탕에서의 양심이란 가혹한 시대적 상황에서 비극적 행동으로 귀결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윤동주가 추구한 심미적, 윤리적 완성은 궁극적으로 실천과 행동으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당대의 사회가 넓은 의미에서 자기 완성의 추구를 허용하지 아니하기 때문이고 그 결과 현상타파를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윤동주는 직접적인 의미의 애국심과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 사이에 갈등을 느낀 경우가 종종 있고 이것이 그의 시의 주요 모티프라고 하였다. 崔東鎬는 윤동주의 시적 의식을 내향적 의식과 외향적 의식으로 나누고 전자는 본절적이며 자아내적 탐구의 성향을 갖는 것이며 후자는 내향적 의식을 극화시켜 시대적 의미의 추구와 새로운 세계에로의 동경이라고 하였다. 이 두 가지 의식은 하나의 지향점으로 통합되는 변모과정을 보여주는데, 그 지향성의 통합을 보여주는 작품이 '서시'라 하였다. 그러나 윤동주의 이러한 통합적 지향성은 다시 내향적 의식으로 귀결되는데, 이러한 결론적인 의식을 보여주는 작품이 '참회록'이라고 하였다. 李南昊는 윤동주의 시는 아름다운 화해와 사랑의 세계를 지향하는 본질적 자아와 시대적 양심을 실천해야 한다는 현실적 자아가 갈등을 일으키다가 결국 그 두 자아가 통합되어 더 큰 하나의 자아로 탄생하는 과정의 기록이라고 보고 있다.
세번째 <전기적 연구>를 들 수 있다. 1949년 8월 30일 자유신문에 실린 유영의 '내가 잃은 삼재'를 필두로 윤영춘, 정병욱, 윤일주 등 실로 많은 사람들이 윤동주에 얽힌 인상기 내지 회고담을 쏟아 놓았다. 1968년 정음사 간행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증보판)에서도 그런 자리를 마련했고, 1973년에는 {크리스챤 문학}에서 윤동주 특집을 꾸미면서, 그리고 1976년 {나라사랑} 여름호에서도 전권을 윤동주 연구와 일화로 채웠다. 뒤이어 평전도 잇달아 나왔는데, 이건청 편저 {윤동주 평전}(문학세계사, 1981)을 비롯하여, 권일송의 윤동주 평전(민예사, 1984),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열음사, 1988), 김수복의 {윤동주-별의 노래} (한림원, 1995) 등이 그것이다.
네번째로 <기독교적 연구>이다. 물론 초기부터 기독교적인 접근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이 단편적 언급이나 피상적 연구에 그치고 있어 아쉬움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다가 1980년대 접어들면서 본적격인 기독교적 연구가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하는데, 곽동훈, 박이도, 정호승, 허규, 채현주, 박춘덕, 이영섭 등의 연구가 그것이다.
다섯번째 <기타 연구>로 김열규와 마광수의 연구를 들 수 있다. 김열규는 윤동주의 시가 자아를 회복하지 못한 '오티즘'속에서 자아분열과 作爲體驗, 그리고 離人症을 드러내고 있다고 하면서 거의 유일하게 윤동주의 시를 전적으로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고, 마광수는 윤동주 시에 나타난 상징적 표현, 즉 자연표상으로서의 상징, 시대 및 역사적 상황의 상징, 내적 갈등과 소외의식의 상징, 사랑과 연민의 상징, 종교적 표상으로의 상징 등 다섯 가지의 상징 세계를 중심으로 문학적 의의를 구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색다르다.
그 동안 쏟아져 나온 수십, 수백 편의 연구 논문과 회고담을 통해, 윤동주라는 한낱 이름없는 문학청년이 한국 문학사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위치에까지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고, 그 시세계도 비교적 속속들이 밝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것은 왜 일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윤동주-인용자 주)에 나타난 신앙적인 깊이가 별로 논의되지 않는 것이 좀 이상하게 생각되곤 했었다"는 문익환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윤동주 시 연구에 있어서 기독교 신앙에 관한 연구는 필수적이다. 그의 시 전반에 걸쳐 있는 사상적 배경은 거의 기독교 신앙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어떤 의미에서 윤동주 시는 信仰的 告白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윤동주 시를 신앙적 고백의 기록이라고 보는 관점은 그동안 이루어진 연구 업적의 미비한 요소를 보충하고 윤동주 詩世界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영섭의 이같은 지적처럼, 윤동주의 詩와 삶에 있어 그 핵심은 信仰이다. 적어도 윤동주의 詩는 그의 삶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고, 그의 삶은 다시 그의 신앙을 제쳐놓고 얘기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따라서 그의 시세계와 삶의 정체를 낱낱이 밝힐 수 있는 열쇠도 신앙이라고 여겨진다. 신앙이란 '개인이나 단체가 확고하게 믿고 움직이는 삶의 방향이며 그것에 우리의 삶을 위탁하는 것으로, 그것은 인간의 삶에 목표를 형성해 주며, 또 모든 사람이 목표를 향하여 움직여 삶을 하나로 일치시켜 우주 공동체를 형성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적 신앙으로 접근하면 마치 문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아닌 것으로 생각하여 피해가거나, 더러 기독교적인 잣대를 들었다 하더라도 윤동주 詩의 흐름을 꿰뚫지 못하고 그저 기독교적 요소 특성 몇 개를 줍고 마는데 그치고 있다. 다시 말해 기독교 사상을 작품 해석의 보조적 수단으로 이용하거나 단편적인 기독교 교리를 가지고 작품을 분석하다 보니 신앙적 변모 양상이나 美意識이 看過되는 愚를 범하고 말았다.
윤동주는 정상적인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신앙적 성장기, 그리고 회의 방황기를 거쳐 신앙적 성숙기로 접어들었다. 따라서 그는 자연스럽게 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기독교적 세계관 안에서 사유하고 판단하며 행동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시는 신앙적 고백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그의 정신세계에는 기독교적 신앙이 깊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의식의 흐름에 입각하여 윤동주 시의 변모과정을 고찰할 때만이 윤동주의 시세계가 제대로 규명되리라고 믿는다.
T.S. Eliot는 '여러 작품들이 이루는 전체 시를 하나의 단일한 장시로 볼 필요가 있는 시인이 있다'고 했는데, 윤동주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고 보여진다. 윤동주의 시 가운데에는 물론 예술성을 목표로 씌어진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그것 못지않게 자신의 내적인 심리 상태를 진실하게 토로하고 있다. 다시말해 형식(언어적 기교)보다는 내용(사상)에 충실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그의 시는 개인적 고뇌의 기록인 셈이다. 그리고 그는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거의 詩作날짜를 적어놓고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그의 시는 "日記詩"로도 불린다.
2. 연구 목적 및 연구 방법
본 論文의 目的은 윤동주 시의 흐름을 신앙적으로 고찰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윤동주의 의식세계가 어떻게 작품에 투영되어 있는가를 밝혀내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의 시를 지배하는 갈등의 논리와 시적 변모 과정, 그리고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자아상도 드러날 것이다.
이를 위해 本考에서는 윤동주의 시세계를 그의 삶과 동일선상에 놓고 기독교적 의식을 주된 열쇠로 하여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분석을 시도할 것이다. 가급적 창작일자 순으로 배열하여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가고, 또 어떤 모습으로 변모되어 가는지 그 과정을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면서 탐색하고자 한다. 또한 최대한의 객관성 확보를 위해 童詩부터 마지막 작품인 [쉽게 씌어진 시]까지 거의 모든 중요 작품들을 전부 다루고, 역시 論者의 편의에 따라 취사선택되는 주관성을 막기 위해 시의 部分이 아닌 全文을 실을 것이다.
윤동주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詩作날짜를 기록해 두고 있다. 그럼 윤동주는 왜 시작날짜를 밝혀 놓았을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의 詩가 내면세계의 기록이라는 점이다. 윤동주는 일기를 쓰듯 시를 썼다. 따라서 그의 시는 자기성찰적 경향이 강하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자기 시의 성향이나 수준이 어떻게 변모되고 있는가를 나중에 쉽게 조감하기 위해서이다. 윤동주는 童詩에서 시작, 습작기를 거쳐 상당한 수준에 이르는 시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이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그리고 아주 열심히 문학수업을 했음을 그의 생애가 웅변해주고 있다. 한용운이 '以道得詩'한 시인이라면 윤동주는 '以詩得道'한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끊임없이 그의 의식세계가 변화되어감에 따라 그의 시세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김영철의 지적처럼 윤동주의 시는 내면적 자아에서 사회적, 역사적 자아로 변전되는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 윤동주의 시는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고 있어 부분부분 보면 각각 다른 세계를 노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조감해보면 일관적인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즉 그의 시는 목표와 지향점이 있다. 앞에서 윤동주의 시는 그의 삶의 기록이고 그의 삶의 핵심은 기독교적 신앙이라고 말했다. 윤동주가 목표로 삼은 삶의 모델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이다. 모든 크리스챤이 그렇겠지만 특히 신앙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그리스도의 생애를 가장 이상적인 삶의 형태로 보고 부단히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려는 노력을 경주한다. 윤동주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도 무던히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의 삶은 하나의 聖化의 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윤동주는 신앙적 성장기를 거쳐 회의 방황기를 맞이했고, 그러나 마침내 그 위기를 딛고 신앙적 성숙기로 접어든다. 그러한 그의 생애가 고스란히 그의 시 속에 담겨 있다. 이것을 파악하는데 그의 시작날짜는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 어쩌면 윤동주는 이것을 의식하고 시작날짜를 적어 두었는지 모른다.
이처럼 윤동주에게 있어 시는 일기와 같은 것이었다. 그때 그때의 삶을 반성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는 도정에서 그의 시는 나온 것이다. '윤동주에게 있어 시와 삶은 언제나 동질적 선상에서 수용되고 추구된 것이다. 더군다나 그의 옥사는 시와 삶이라는 희귀한 국면을 하나의 역사적 완성물로 결정지어 놓았다. 따라서 그의 시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 시대나 삶의 측면을 도외시하는 형식주의적 방법이나 속류 구조주의적 방법은 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의 시는 숙명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 시대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평에서 의도의 오류라고 부르는 어리석은 실수를 회피해야 한다. "이것으로 작가는 무엇을 말했는가"라는 질문은 언제나 불합리한 것이다. 첫째, 우리는 그것을 결코 알 수 없다. 둘째, 작가가 그것을 알고 있었다고 가정할 이유가 없다. 셋째, 그 질문은 상상적 저서와 논증적 저서를 혼동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노드럽 프라이의 지적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윤동주 시 연구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견해로 보인다. 오히려 허쉬의 다음의 견해가 윤동주 시에 접근하는데 훨씬 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무관련설을 주장하는 학문적 회의주의는 허다한 혼란을 가져 왔을 뿐이다. 일단 자신의 텍스트 의미의 결정자로서의 저자가 사정없이 추방당하자, 한 해석의 타당성을 판단할 적합한 원칙이 없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중략) 의미의 결정자로서의 원래 작가를 추방하는 것은 한 해석에 타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강력한 규범적 원칙을 거부한 것이다. 텍스트의 의미가 작가의 의미가 아니라면 어떠한 해석도 그 텍스트의 의미에 부합할 수 없을 것인데, 그 텍스트는 어떤 결정된 또는 결정 가능한 의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는 절대주의 분석 비평의 영향으로 역사라든가 시인의 생애, 의도를 비평에 개입시키면 잘못된 것으로 알아 왔다. 그러나 적어도 윤동주를 논하는 자리에서는 절대주의 분석 비평의 논리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어진다. 그것은 단순하게 역사와 인간을 배제하는 문학론이 知的 靜寂主義에 떨어질 공산을 가진다는 경계심만으로가 아니다. 솔직히 윤동주의 경우 그의 시는 생활이며 현실 자체요, 그 역 또한 참이다.
시인은 개성을 지닌 개인이다. 따라서 세계를 보는 관점과 해석이 각양각색일 수 밖에 없다. 대체로 문학작품에는 시인의 개성적인 체험의 세계가 반영되기 마련인데, 이러한 개성, 곧 창의성은 오히려 작품의 예술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다. 윤동주는 그 어느 시인보다도 체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형상화했다. 따라서 그의 시 연구에는 그가 살았던 사회와 시대상황 등 전기적 사실 파악이 필수적이다. '윤동주의 경우처럼 그 작품과 삶과 지조가 완전히 구합일체화(具合一體化)된 예는 극히 드물다. 시와 사상, 사유와 지조, 그리고 시와 생애가 촌분의 괴리도 있을 수 없이, 그의 서정 정신과 저항 정신의 한 줄기 殉節에의 희생으로 일철화(一轍化)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본 연구에서도 윤동주의 성장 배경, 家系, 생활환경, 학교생활, 교우관계, 취미 등이 작품 창작에 영향을 주었다는 전제 아래 접근을 시도할 것이다. 특히 종교와 사상에 관해 면밀히 조사, 분석하여 그 토대 위에서 윤동주의 심리상태를 추리하면서 그가 창작한 작품의 의도를 파악해 나가고자 한다. 그러면 그의 세계관이 어떠하였으며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밝혀질 것이다.
출처 :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
글쓴이 : 리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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