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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의 수업/작가, 작품론

2011년 젊은시

by 拏俐♡나리 2011. 2. 10.

2011젊은시
        
최옥자ㅣ전북 부안 출생. 「2009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e-mail : magicking805@yahoo.co.kr

                    최
                    옥
                    자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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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

 
연잎 위에 고인 물방울에 거미 한 마리
갇혀 있다. 연잎의 먹이가 되어 허우적댄다
연잎은 먹이가 지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린다
거미의 비명은 물방울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몇 겹의 그물 밖에 펼쳐진 여름의 고요에 가 닿지 못한다
기다림의 팽팽한 끝, 거미의 움직임이 느려진다
긴 다리를 쭉 뻗어 내리며 고개를 떨어뜨린다
 
햇빛이 물방울을 증발시킨다
물기 마른 연잎 위엔 죽어있는 거미
어느새 몸을 말리고
느긋한 여름 하늘 끝 거미줄을 친친 감고 있다
죽어서도 멈추지 않는
시방(十方)으로 뻗어나가는 저 생명의 모의(謀議),
죽은 어미 몸에서 새끼거미들이 빠져 나온다
아직 세상의 눈물을 맛보지 못한 몸이 투명하다
어미의 몸에 감긴 거미줄을 찾아낸
새끼거미들이 하나 둘
어미의 거미줄을 타고 연잎을 빠져나가
하늘로 하늘로 오르고 있다
 
-등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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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는 식욕

 
    활어가게에서 사온 고등어 등에서 집어등 불빛이 새어 나온다 한 사내의 주름 깊은 가슴이 바다의 기억인 양 조명(照明)되고 있다
  일렁이는 것들은 녹슬지 않는 것인지 아직도 싱싱한 시간들, 파도가 고등어 등에 바다의 기억을 새겨놓듯 물마루에 걸린 아내 얼굴이 사내의 가슴에 주름살을 만들고 있다
 
  그물을 끌어 올릴수록 더욱 쏜살같이 내달리는 고등어 떼
  힘을 주었다 풀어도, 아귀를 벗어나려 필사적인 고등어 위로
  뭍으로 달아난 아내 얼굴이 겹쳐진다
 
  여전히 누그러지지 않는 성깔들이 서로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는 저녁, 도마 위의 고등어가 파닥거리다 숨을 놓는다
  나는 얇게 저민 고등어 살을 꾸역꾸역 삼킨다
 
  상처에 대한 호기심은 언제나 솔깃하다
 
-등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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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가슴


형광등에 고추잠자리 한 마리 붙어있다
형광등의 포로가 되어 날개 파닥인다
형광등은 잠자리의 날개 속으로 투명한 그물을 던진다
날개를 투과한 그물이 뜨겁게 환하다
잠자리의 파닥거림은 어둠의 경계를 넘지 못한다
가슴을 붙이고 수평을 유지하기엔 가혹한 시간의 틈
초점 잃은 겹눈으로 잠시 날아올라
불빛주위를 빙빙 돌던 잠자리가 다시
그물 속으로 되돌아온다  
가슴을 데이면서도 다시 날아드는 저 무모한 격렬을
보아, 빛으로만 날아들도록 입력된 저 사랑의 단순을
형광등갓에 오래 엎드려 지켜보고 있던 게거미*가
재빨리 잠자리를 나꿔챈다
잠자리날개가 버석거린다
불빛에 중독 된 잠자리의 바동거림이 멎는다
오르가슴 속에서 온 몸이 파먹히고 있다


*거미줄을 치지 않고 보호색을 띠고 있다 먹이를 잡으며 게처럼 옆으로 걷는 거미

-기발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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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우지가 사는 법


다큐멘터리 속 어부는
가마우지 입에서 하루치 시간을 꺼낸다
가마우지의 허기진 하루가 거세당한 식욕처럼 벗겨지고 있다
강제된 소식(小食)은 목에 묶인 끈을 잊게 하나
어부의 낚싯바늘이 되어 쉼 없이 물갈퀴 허우적댄다
한줌으로도 움켜쥘 수 없는 식욕 속으로 자맥질하며  
잠수와 부상을 거듭하는 동안
가마우지의 숨은 떡밥처럼 부풀어 오른다
만족을 모르는 어부의 손이
더욱 필사적으로 목줄 조여 온다
눈물이 강물 위에 파문을 그리는 저녁 무렵에야
조여진 목구멍을 비웃으며 물고기 한 마리가
가마우지의 빈 위(胃) 속으로 떨어진다
오늘도 다큐멘터리를 찍고 온 내가 냉큼 삼켰던
마이너스통장의 대출 잔액을 더욱 부풀게 하는,
내 월급의 가시가 목구멍을 후비며
쓰디쓴 위액이 가득한 위장 속으로 입수하는 저녁
삶에 대한 갈망은 모욕보다 뜨겁다

-기발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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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나* 부는 남자
 
언제부턴가 그는 새처럼 말하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새의 말은 울음으로 혹은 노래로 들리기도 하므로
그는 속마음을 들킬 염려가 없다
오래지 않아 둥지 떠나야 하는
그의 날갯죽지에 박혀있는 바람의 가시         ``        
텃새가 아닌 그는
왜 떠나야 하는지 의문을 품지 않는다
그에게 의문은 사치이자 그리움의 통로이다
눈빛 순박한 한국여인과 그 여인 닮은 아이들 웃음소리 찾아
고단한 하루 내려놓는 꿈속으로
그가 온종일 공장에서 찍어내던 구두굽은
족적으로나마 표시하고 싶은 영역이었을까
밤이면 옥상에 올라 새들의 말을 토해내는 남자
내일이면 만료될 비자를 쥐고
철새가 되어야 할 페루에서 온 그는
페루에 가서 죽고 싶어도 떠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의 넓적다리뼈로 만들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케나소리처럼
오늘도 그의 말은 끝없이 기억 속을 배회하고 있다

*페루의 안데스 지방 인디오들의 피리.  
** 로맹 가리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인용

-신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