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현장에서 살펴본 생명체의 생존방식
최옥자 시인은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등단작 5편의 소재를 보면 「그물」은 거미, 「죽지 않는 식욕」은 고등어이고, 「펠릿」에는 흰눈썹황금새, 넓적사슴벌레, 하늘소, 풍뎅이, 매미, 나비가 나온다. 「도토리거위벌레의 시간」과「게거미의 7월」은 제목 속에 곤충 이름이 나온다. 기 발표작 「오르가슴」에는 고추잠자리가 나오고, 「가마우지가 사는 법」에는 제목이 이미 소재를 명시하고 있다. 「케냐 부는 남자」는 남자를 새에 빗대어 노래하고 있다. 자, 이러니 시인의 주된 관심사가 뭇 생명체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럼 최승호나 김기택과는 다른 시 창작의 방법을 강구해야 할 터인데, 지금부터 그 부분을 살펴보기로 하자.
거미 한 마리가 연잎 위에 고인 물방울에 갇혀 허우적대다가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그물을 쳐놓고 다른 곤충을 잡아먹고 사는 거미가 고작 연잎에서 벗어나지 못해 죽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이시의 초점은 거미의 죽음에 있지 않다. “죽은 어미 몸에서 새끼거미들이 빠져나온다.”는 전환의 순간부터 시는 새롭게 시작된다. 햇빛이 물방울을 증발시켜 물기 마른 연잎 위에 죽어있는 거미이니, 새끼 운운은 시인의 상상이 아닐까. 그런데 파리도 파리채를 휘둘러 잡다 보면 죽은 파리 몸에서 잘디잔 새끼 수십 마리가 기어나오는 경우가 있으니, 거미의 몸에서 나오는 새끼들이 상상이나 환상의 결과물이 아닐 수도 있다. 아무튼,
아직 세상의 눈물을 맛보지 못한 몸이 투명하다.
어미의 몸에 감긴 거미줄을 찾아낸
새끼거미들이 하나 둘
어미의 거미줄을 타고 연잎을 빠져나가
하늘로 하늘로 오르고 있다.
―「그물」마지막 부분
을 보면 거미의 끈질긴 종족 번식의 본능을 엿볼 수 있다. 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한 본능이 개체의 생명 유지와 종족 번식이다. 전자에 필요한 것인 먹이이며 후자에 필요한 것은 짝이리라. 어미의 몸이 죽어서 말라도, 새끼들이 그 몸에서 기어나와 하늘로 오른다고 한다. 이것을 함께 죽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가 있는데, 이 때 그물은 포획의 그물이 아니라 생명과 생존의 그물이다. 거미는 거미줄이라는 그물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고, 사람(어부)은 그물로 가족의 생명을 지탱한다.
「죽지 않는 식욕」에는 아내가 뭍으로 달아나 혼자 살아가게 된 한 사내가 나온다. 그는 고등어 잡이 어부다. 화자는 “물마루에 걸린 아내 얼굴이 사내의 가슴에 주름살을 만들고 있”는 것을 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가면 한 사내가 나와 오버랩이 된다. 화자가 “얇게 저민 고등어 살을 꾸역꾸역 삼키”고 있으니 말이다. 아내가 가도 식욕은 죽지 않아 또 이렇게 “아귀를 벗어나려 필사적인 고등어”를 삼키는 것이다. 마침내 고등어는 달아난 아내와 오버랩이 된다. 상황이 어떻게 바뀌든 인간에게 식욕과 성욕은 가장 근원적인 욕망임을 이 시는 말해주고 있다.
「오르가슴」은 약육강식의 비정한 세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형광등 불빛을 보고 무모하게 달려들던 고추잠자리의 최후가 형광등 불에 데어 죽는 것이 아니다. 잡자리를 예의 주시하고 있던 게거미가 잠자리를 나꿔채 머는다. “불빛에 중독된 잠자리의 바동거림이 멎”고, 잠자리는 “오르가슴 속에서 온몸이 파먹히고 있다.” 어찌 보면 비정하고 어찌 보면 당연하다. 잠자리가 불빛에 중독되어 오르가슴을 느끼며 죽어가고 있다고 시인은 본 것인데, 사실 여부야 어떠하던지 간에 먹이를 취하고 먹이가 되는 순간을 포착하여 시로 만든 솜씨는 꼼꼼한 관찰력에서 나온 것이다.
「가마우지가 사는 법」은 제목과 반대로, 어부가 가마우지를 잡는 법이 나온다. 해양에 사는 텃새의 일종인 가마우지를 어부는 물고기 미끼를 사용해 잡는데,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를 통해 본 시인은 그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런 연후에 화자의 일상적 삶으로 카메라 위치를 옮긴다.
오늘도 다큐멘터리를 찍고 온 내가 냉큼 삼켰던
마이너스통장의 대출 잔액을 더욱 부풀게 하는,
내 월급의 가시가 목구멍을 후비며
쓰디쓴 위액이 가득한 위장 속으로 입수하는 저녁
삶에 대한 갈망은 모욕보다 뜨겁다
최옥자는 가마우지가 어부에게 잡혀 죽어가는 모습이나 마이너스통장의 대출 잔액이 부풀어가는 화자의 모습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시의 제목은 ‘가마우지가 죽어가는 과정’이 되어야 했겠지만 역설적으로 이렇게 붙인 것이다.
「케냐 부는 남자」는 한국에 와서 구두공장에 취업한 페루 인디오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눈빛 순박한 한국여인과 그 여인 닮은 아이들 웃음소리 찾아/ 고단한 하루 내려놓는 꿈속”으로 가므로 국제결혼을 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내일이면 만료될 비자를 쥐고/ 철새가 되어야” 한다. 생이별을 하거나 불법체류자가 되거나 양자택일을 기로에 놓여있다. 다분히 시사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시에서도 최옥자는 “그이 날개 죽지에 박혀있는 바람의 가시 / 텃새가 아닌 그는”하면서 사람을 새에 빗대어 노래하고 있다.
이상 살펴본 대로 시인은 인간세상의 이모저모를 곤충이나 어류, 조류 등 다른 생명체에 빗대어 다루려는 일관된 정신을 갖고 있다. 이 점, 앞선 시인들과 변별되는 것임이 분명하니, 앞으로 계속해서 이 지점을 파고들면 독특한 자기만의 세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선정위원 l 이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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