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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돌이 별자리처럼 빛날때 / 김병호

by 拏俐♡나리 2011. 6. 2.

[200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징검돌이 별자리처럼 빛날때 / 김병호

 

 

금줄 친 대문이 어둠을 낳습니다

대문에서 토방으로

토방에서 사랑방으로 이어진

징검돌이 별자리처럼 빛납니다

환하고 평평한 징검돌 안에 담긴

어린 내가 별을 닮아가는 밤

할아버지는, 저녁보다 먼 길을 나섭니다

 

눈 깊어 황소 같던 할아버지

할머니를 맞던 해 봄날

강가의 둥글고 고운 돌만 골라

새색시 작은 걸음에도 마치맞게

자리 앉혔다는 징검돌

그 돌들이 오늘밤

별똥별 지는 소리로 울고 있습니다

 

별똥별 하나, 하늘을 가르자

어미 소의 울음소리가 금줄을 흔듭니다

미처 눈 못 뜬 송아지를 핥아줍니다

내 볼이 덩달아 따뜻해집니다

 

하늘은 오래된 청동거울처럼 깊습니다

바람은 저녁을 다듬어

첫 별 뜨는 곳으로 기울고

내가 앉은 징검돌들이

지워진 별자리를 찾아 오릅니다

 

삼칠일도 안된 송아지의 순한 잠을

이제 할아버지가 대신 주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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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당연한 말이지만, 신인의 시는 참신해야 하고 내적인 절실함에서 비롯된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튼튼한 시적 역량을 겸비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심사자들이 의견을 교환한 것은 바로 이런 심사의 척도였다.

 

김병호의 '징검돌이 별자리처럼 빛날때'를 올해의 당선작으로 뽑는다. 시의 질료로서의 언어에 대한 감각이 이만큼 섬세한 신인도 드물 것이다. 마음의 천진성에서 비롯된 동화적 상상력도 독특했다.

 

'강가의 둥글고 고운 돌만 골라 / 새색시 작은 걸음에도 마치맞게 / 자리 앉혔다는 징검돌'이나 '내가 앉은 징검돌들이 / 지워진 별자리를 찾아 오릅니다'같은 표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함께 응모한 '봄날의 사진 한 장'에 나오는 '어머니에게 연애 한 번 걸고 싶은거지요 / 봄 햇살 속의 어머니를, 나는 / 그만 처녀로 놓아주고 싶은 것이지요' 같은 구절도 그렇다.

 

한 편의 시를 서정적으로 끌고 가는 리듬 구사 능력과 분위기의 통일성에서 시적 역량이 느껴졌고, 대상과 공명(共鳴)하는 부드럽고 여린 감수성이 귀한 것으로 여겨졌다. 두 심사자 사이에는 당선작에 대한 이견이 없었다. 당선을 축하하고, 향상의 길 위에 시가 늘 있기를 기대한다.

 

끝으로 낭승민의 '양초', 김선아의 '인사동, 황사 며칠', 안여진의 '새장에서'가 최종까지 논의되었음을 밝힌다.

 

- 심사위원 : 감태준 시인, 최승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