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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의 수업/작가, 작품론

이태준 "해방 전후"에 대하여

by 拏俐♡나리 2011. 11. 18.

이태준 "해방 전후"에 대하여
 이태준-호는 상허(尙虛) . 상허당주인. 1921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일본에 건너가 상지대학(上智大學) 예과에서 공부하였다. 귀국한 뒤로는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 중외일보, 조선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했다. 1933년 구인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30년대말에는 <문장>의 소설 추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최태응, 곽하신, 임옥인 등을 배출했다. 8.15 해방 후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임화, 김남천 등과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조직하여 활동하다 월북했다. 한국전쟁 때에는 북한의 종군기자로 활동했다. 1955년 소련파 숙청시 가혹한 비판을 받고 숙청되었다.
1925년 시골 여인의 무절제한 성생활을 그린 "오몽녀"로 등단한 뒤, "불우선생"(1932) "손거부"(1935) "가마귀"(1936) "복덕방"(1937) 등의 작품을 잇달아 발표한다. 이 작품들은 현실과는 무관한 듯한 인물을 그리고 있지만 대부분 토착적인 생활의 단면을 서정적으로 보여 준다. 그는 특히 문학의 자율성과 언어의 정련(精練)을 강조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몇  번을 되풀이해서 퇴고했는데, 이런 점에서 그의 소설은 한국문학사에서 소설의 기법적 완숙과 예술적 가치를 드높인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예술지상주의의 이효석이나 시정의 세계를 묘사한 박태원과는 달리, 허무와 서정의 작품 세계 속에서도 시대 정신의 호소력을 지닌다. "사냥" "영월영감" 등에서는 폐쇄된 상황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소망이, "농군'에서는 만주 이민의 비극적 투쟁이 그려진다. "돌다리"에서는 한 농부의 성실과 토착 전통에 대한 외경의 이루고 있는 조선인의 철학 세계가 일제말까지 존재했음을 그린 것이다.
1948년 북한의 토지 개혁 문제를 다룬 "농토"를 펴 냈고, 전후 미군에 대한 적대감을 그린 "첫 전투" "고향길"을 펴 냈다. 이 시기에는 초기와는 달리 정치 . 사회적 현실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선전 . 선동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해방 직후의 어지러운 상황에서 자신의 이념적 변화를 형상화한 "해방 전후"나 북한의 토지 개혁 과정을 그려 낸 "농토" 등이 그러한 작품들이다. 소설집으로 <밤>(1934), <구원의 여상>(1937), <화관>(1938), <이태준 단편집>(1941), <돌다리>(1943) 등과, 수필집으로 <무서록> 등이 있다. 그 밖에 한 시대의 뛰어난 저서로 평가 받은 <문장론>, <문장 강화>가 있다.

이태준의 "해방 전후"감상
"해방 전후"는 1946년 8월 <문학>에 발표한 '한 작가의 수기'라는 부제가 붙은 자전적 중편소설로, 상허 이태준의 사상적 변모의 단서가 보여 주는 중요한 의미를 담은 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현'이라는 주인공을 통하여 1945년 8.15 광복을 전후해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을 다루면서, 앞으로 일어날 좌익으로의 전환 과정을 보여 준다. 이 작품은 '한내천'과 '서울'을 배경으로, 광복 직전부터 좌우익의 대립이 치열하던 '조선문학가 동맹'(1946) 결성 직후를 시간적 배경으로 작가 자신의 변모 과정을 다루고 있다.
현은 사상가도 주의자도 전과자도 아닌 소설가인데 불구하고, 중요 시찰 대상이 된다. 순사가 가져온 시달서를 받은 현의 태도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밥맛이 없고, 설치는 밤잠에 꿈자리조차 뒤숭숭한'-로 보아 매우 소심한 성격이다. 그러나 그는 일본 형사의 감시를 당하면서 시국협력 문제와 창씨 문제로 번민을 느끼다가, 결국 경무대의 지시로 '대동아전기'를 번역하게 된다. 그의 말대로 살고 싶은 내적 욕망에서다.

-현은 정말 살고 싶었다. 살고 싶다기보다 살아 견디어 내고 싶었다. 조국의 적일 뿐 아니라 인류의 적이요 문화의 적인 나치스의 타도를 오직 사회주의에 기대하던 독일의 한 시인은 모로토프가 히틀러와 악수를 하고 독소 중립 조약이 성립되는 것을 보고는 그만 단순한 생각에 절망하고 자살하였다 한다.
'그 시인의 판단은 경솔하였던 것이다. ...(중략)... 정의와 역사의 법칙이 인류를 배반한다면 그 때는 절망하여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관리들의 간섭이 덜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강원도 어느 산읍으로 떠난다. 그래서 징용이난 면하고, 식량을 해결하고, 낚시질로 소일하면 간섭 없이 지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에게 힘이 될 만한 것은 이미 없었다. 그럴 즈음, 김 직원 노인을 만나게 된다.
김 직원은 깨끗한 인물이다. 비록 구세대의 인물이지만 고을에서는 존경 받을 만한 인물이다. 그는 기미년 독립운동 때 감옥살이를 했고 총독부가 싫어 서울을 피하여 살고, 창씨도 안하고 '상투와 갓'을 쓰는 왕정복구에 대한 의지가 곧은 저항적인 인물이다. 현과는 나이나 학문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두 번 만남으로도 서로 의기가 통한다.
그러나 현은 친일적인 '문인보국회'의 궐기대회에 참가해 달라는 끈질긴 독촉에 갈등하다가 결국 '소설부'의 대표를 맡게 된다. 그러나 그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대회장을 빠져나와 시골로 돌아간다. 낚시질과 한시로 소일하면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돌아보고 '일제의 조선 민족 정책에 정면 충돌로 나서기에는 현만이 아니라 조선 문학의 진용 전체가 너무나 미약했고 너무나 국제적으로 고립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를 마련한다.
해방이 되면서 두 인물은 서로 다른 길을 택하게 된다. 순수 문학만을 고집하던 현이 재빠른 진보주의로 변신을 추구했다면, 김 직원의 사상은 오직 조선 왕조의 재건에만 머물러 있다. 현은 이러한 그의 사상이 이해하고 동정할 수는 있어도 동조할 수 없다. 그의 사상은 구시대의 유물이기 때문에 새 시대 건설에는 적합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김 직원과의 대화 속에서 자신이 선택한 신념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감사합니다. 또 변했단 것도 그렇습니다. 지금 내가 변했느니, 안 변했느니 하리만치 해방 전에 내가 제법 무슨 뚜렷한 태도를 가졌던 것도 아니구요. 원인은 해방 전엔 내 친구가 대부분이 소극적인 처세가들인 때문입니다. 나는 해방 후에도 의연히 처세만 하고 일하지 않는 덴 반댑니다.

현, 곧 이태준의 해방 이전의 삶의 방식을 고백하고 있다. 이태준은 해방 이전의 자신의 삶의 방식을 무정견, 무신념의 처세주의(기회주의) → 행동 콤플렉스 확인 및 자기 회한 → 직접적인 형태의 현실 참여로 단체 가맹 → 소외감과 적응 의지의 중복 → 이데올로기의 자기화 등의 순서를 밟은 것으로 드러난다. 다시 말하면, "해방 전후"는 해방 이전의 자신의 삶을 처세주의롤 반성하는 가운데, 행동 콤플렉스를 느낀 작가가 그 해소 방안으로 좌익 단체의 가맹에서 찾기까지의 과정을 보여 준 소설이다. 그리고 해방 후 현의 변화된 모습은 김 직원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리면서 분명히 드러난다.

-미국군은 지프가 물매미떼처럼 서물거리는 사이에 김 직원의 흰 두루마기와 검은 갓은 그 영자 너머에 표표함이 있었다.

현은 김 직원 노인을 청조 말의 학자 왕국유(王國維)에 비유하고 있다. 그는 일본에 있으면서 청나라식 편발을 고집했고 청(淸) 왕조의 복위를 그리워하다가, 청이 망한 사실을 깨달은 다음 곤명호에 빠져 죽었다. 왕국유의 죽음은 단지 민족이나 인민의 행복과 진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군주에게 연연한 복고주의적 죽음일 뿐이라는 것이다.
일제 시대부터 그처럼 구박과 멸시를 받으면서 끝내 부지해 온 김 노인의 상투는 다름 아닌 현, 아니 상허 이태준의 해방 전의 사상적 궤적이라 할 수 있다. 이태준이 상투를 과감히 자르고 좌익에 가입하면서 그 대가를 찾았다면, 김 직원 영감은 끝내 과거 지향적인 왕정복구의 낡은 사상에 젖어 있는 소지식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해방 전후"는 이태준의 사상적 변모가 단서를 보여 주는 중요한 의미가 담긴 소설이다. '한 작가의 수기'라는 부제에서 읽을 수 있듯이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로서 앞으로 일어날 이태준의 사상적 전환을 암시하는 소설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이태준의 해방 전의 다른 작품이 주로 소멸되어 가는 조선적 세계를 그린 것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여 준다.
이 작품처럼 해방 공간에 좌익 세력에 가담한 지식인 . 문인들을 소재로 한 소설들 중 중요 작품으로는 윤세중의 "십오일 후"(1945), "청년"(1946), "묘지"(1946), 지하연의 "도정(道程)"(194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