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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북국으로 날아간다 / 이향

by 拏俐♡나리 2012. 2. 2.

[2002년 매일신춘문예 당선시]

 

새들은 북국으로 날아간다 / 이향

 

 

강 건너 쌍림공단 쪽에서 깃털에 따스함을 숨기고

쇠기러기 한 떼가 북국으로 날아간다

뭉텅뭉텅 욕설 게워내는 굴뚝 위로

폭설이 내려 세상의 길들 질척거린다

눈발에 못이긴 나무들 길게 휘어지고

섬유공장 연사실 대낮에도 알전구가 껌벅거린다

서른 두 살의 조선족 김금화씨는

귀마개 꽁꽁 틀어막아도 눈내리는 소리 들린다

윙윙대는 기계소리가 푸른 뽕잎 갉아먹고

다급하게 실 토해내어 고치를 만든다

고치 속으로 들어간 그녀는

수천마리 나비가 되어 꿈 속을 날아다닌다

몰래 숨겨둔 적금통장에는

삼만원 미만의 싸락눈이 하얗게 쌓인다

두고 온 북국 눈발에 파묻힌 무도

연초록 싹 내밀어 봄을 기다리겠지

막내의 바짓단도 겨울해만큼 짧아졌는지

더 자랄데 없이 서걱이는 강둑의 갈대가

그리움에 얼굴 묻고 우는 저녁

젖몸살로 뒤척이다 뱉아놓은 보랏빛 한숨

한 가닥 물고 북국으로 날아가는

저 쇠기러기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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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선에 올라온 40여 편의 작품 중 최후까지 손 안에 남은 작품은 10편 가량, 모두가 나름대로의 몸짓을 보이고 있는 수준작이어서 당선작을 뽑는데 고심이 많았다.

 

'죽동 1信'은 사이버시대 생활상을 시적 상상력으로 처리하는 내면이 돋보였고, '서라벌의 빗소리'와 '가시연꽃의 비밀'은 우리 전통 속에 녹아있는 어떤 정한을 현대적 어법으로 길어낼 줄 아는 솜씨가 매력이 있었다.

 

'빙설'은 특이한 감각의 소유자였고, '달팽이'는 발상의 처리가 재미를 주고 있었다. '건어물에 바다가 있다'는 건어불의 정경 묘사를 삶의 페이소스와 연결시킨 점이 좋았고, '텃발', '달못둑에 서서', '내 사랑 수몰지역', '새들은 북국으로 날아간다'는 모두 사회생활이 던져주는 의문의 여러 파편들을 진지한 시선으로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호감이 가는 작품이었다. 그 중 요즘 남한 사회에서 겪게 되는 조선족들이 지닌 '코리안 드림'의 짙은 그늘을 지금 내 아픔처럼 시적 압축으로 형상화시키며 감동을 주고 있는 '새들은 북국으로 날아간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이향씨의 작품 중에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 '세 개의 바다'도 좋았으나 환성도와 압축의 의미를 고려, 이 작품을 선택했다.

 

-심사위원 : 귄기호 시인(경북대 교수), 정호승 시인(현대문학북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