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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의 일상/길위의 학교

[스크랩] 안동 ‘이현보’ 문학기행-둘째 날 사진과 후기

by 拏俐♡나리 2010. 1. 20.

 

 

‘밤안개’가 밤새 머물다 아침 ‘물안개’가 되었습니다. 여긴 안동댐 밑이라 물이 흘러가 버려 바닥을 드러내야 하는데, 월령교 저만치 밑으로 댐 비슷한 것이 버티고 있어 이렇게 강물이 차분하게 모여 있습니다.


 

 

 설산을 배경으로 한 월영교. 월영교(月映橋)는 ‘달빛 비치는 다리’라는 뜻인가 봅니다. 위 사진, 제가 봐도 사진 값은 받아야 할 정도로 조금 잘 나왔네요. 그런데, 모델 값 달라고요?…… 으흠, 없던 이야기로 하죠.

 

 


 

물안개가 잠시 모델을 위해 눈밭 모양으로 뭉쳤습니다. 최명자 님. 저랑 같은 학년이니까 명자 씨! 털모자와 털장갑과 털목도리가 예쁘고 어울리죠? 그러나 산에는 이 분 데리고 가지 마십시오. 청바지 입고 나타날 테니.

 


 

저만치 우리가 가지 못한, ‘안동민속박물관’ 부속 야외 박물관 시설들입니다. 드라마 촬영지를 비롯한 여러 볼거리들이 있고 해서 하루 더 묵고서 구경하고 싶었지만 세상은 우리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우리도 이현보처럼 ‘귀거래(歸去來 ;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감)’ 해야 하는데……

 

 


 

‘귀거래’를 작심한 분들입니다.


 

 

사랑방 역할을 하는 이현보 종택의 긍구당입니다. 이현보의 집인 ‘농암종택’은 봉화군과 인접한 곳에 위치합니다. 버스가 잠시 방향을 봉화 쪽으로 잘못 들어간지라 멀리 청량사(청량산) 입구가 보여 반가웠습니다. 예전에 청량사에서 반딧불이랑 놀다가 그 다음날 시골 트럭 히치하이킹해서 도산면까지 왔었지요. 그렇게 도산서원을 갔고요. 농암종택은 더 외진 곳에 있어 좋았습니다. 

 

 


 

한옥 창에 유리를 덧댄 것은 봤어도, 이렇게 튼튼한 비닐을 고정대 이용해 박아놓은 것은 처음 본 듯합니다. 강가의 겨울바람이 매섭기 그지없겠지요. 예전에는 이마저 없었고 더 추웠을 텐데 어찌 지냈을까 싶습니다. 

 

 

 

묵묵하면서 가끔 말을 터뜨리면 웃음보를 자극하는 서영용 선배. 경매 물건 관심 버리시고 , 부동산 공부 그만하시고 시만 쓰시면 좋으련만……

 


 

이 사진도 잘 찍었지만

 

 


 

누가 찍었는지 이 사진이 더 낫네요. 이런!


 

 

이제 도산서원입니다. 그 곳 안, ‘공(工) 자 모양의 유생들 공부방 겸 침실 ’농운정사‘. 여름날, 문과 창문을 모두 열어놓으면 바깥 공기가 시원하게 들고 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유생들을 배려한 것이지요.


 

 

퇴계 선생이 기거하던, 도산서당 방 ‘완락재(玩樂齋)’. ‘생명이 다하도록 즐기며(락) 감상하여도(완) 싫증이 나지 않을 만하다’라는 주자의 말에서 따왔다 합니다. 왼쪽에 보이는 구획된 공간 보이시죠? 책을 이곳에 차곡차곡 쌓아놓지 않았을까 싶은 공간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다락 같은 공간입니다.

 

 

 

도산서당의 마루, ‘암서헌(巖栖軒)’. 이곳 이름은 운곡이라는 분의 시 구절 ‘바위 사이에 살며 은근한 효과가 나타나기를 바라노라’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부산의 강은교 시인도 본인 집필실 창가의 턱 부분, 올라가 쭈그리고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을 ‘은포   ’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렇게 자기와 관련된 작은 공간에 이름을 붙이는 일, 참 멋진 일인 것 같습니다. 만약 ‘문학기행반’에 자그마한 공간이 주어진다면 그냥 ‘무슨 건물 몇 호’ 하지 말고 근사한 이름 붙일 일이지요.

 

 

 

암서헌 들마루에 툇마루도 덧대고 처마도 덧대어 공간이 넓어졌습니다. 춥지 않은 계절에 더 많은 유생들이 앉아 선생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겠지요. 이렇게 도산서원 안의 도산서당은 우리나라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곳 중에 하나랍니다.

 

 

 

서원 관리인들의 살림집이자 서원 식구들의 식사를 준비하던 곳, 고직사(庫直舍). 역시 제가 좋아하는 특이한 구조의 건물입니다. 이름에 ‘직’ 자가 들어있듯이 이 안에 들어서면, ‘ㅁ’ 자 건물이 마당을 둘러싸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변 건물이 보이지 않고 오로지 하늘만 보이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고 합니다. 

 


 

닳고 닳은 책상. 퇴계 선생이 쓰던 공부 책상입니다. 퇴계 선생의 학문 세계를 밑받침해준 오래된 벗. 이 책상 사진을 바라보며 뜻하는 일에 정진(精進)하고 싶습니다.

 

 

 

마지막 단체사진. 가장 정겨운 도산서당 안에서 찍어서 다행입니다.

 

 

 

문화해설사를 따라 ‘안동민속박물관’의 경내를 둘러보면서 조선시대 사람들의 ‘관혼상제’를 비롯해 일상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운 좋게도 열성적이고 친절한 해설사를 도산서원에서, 이곳 ‘안동민속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 있어야 하니 얼마나 철두철미 준비했을까 싶었습니다.  

  


 

워낭. 말이나 소의 턱 밑에 늘이어 단 방울. ‘워낭소리’ 영화 보셨나요? 제 버스 짝꿍이 그 영화 봤냐고 해서, 저는 그 영화 보면 쇠고기 못 먹을 것 같아 못 봤다고 했습니다. 조금 거시기한 답변이었습니다. 맹도견의 일생을 다룬 영화 ‘퀼’을 며칠 전 봤는데, 이 워낭에 해당할 물건이 그 맹도견 퀼에게도 있습니다. 주인이 맹도견 목에 메고서 손으로 집고 다니는 물건입니다. 이름은 모르겠습니다. 종영하기 전에 꼭 보시길.

 

 

 

농기구들. 저는 철이 없어서 보기만 해도 배불러 보이는 기구들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농부들의 일 년 농사가 얼마나 고달팠을는지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제 버스 짝꿍 등장. 어려서 이 농기구가 걸린 초가집 같은 그런 초가집에서 살았다는 추억담을 버스 안에서 들었습니다. 1년에 한번 마을사람들끼리 품앗이하며 서로의 집 지붕 위에 짚더미를 쌓아올려 겨울준비를 했더랬지요. 그 위로 비가 내려도 속에 빈 공간이 많은 초가지붕은 빗소리를 아련한 크기로 줄여 주었더랍니다. 잠을 잘 잘 수 있었고요. 그러던 것이 ‘새마을운동’을 계기로 양철지붕으로 바뀌었는데, 비만 오면 양철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그렇게 시끄러울 수 없었답니다. 민속 구경도 하고, 실제 경험담도 듣고 저는 그렇게 기행을 겹으로 했습니다. 짝꿍을 잘 둔 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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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영교 앞 ‘물박물관’을 마지막으로 안동 ‘이현보’ 기행을 마쳤습니다. 오래간만에 참여해서 그런지 말이 많아졌습니다. 좋은 시간들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수고한 분들께 감사해요.


신기한 스쿨버스는 다시 도시로 향합니다. 도시 아닌 곳에서 자연을 접한 추억을 담고 올라갔습니다. 그 추억을 새끼 치고 생활로 주변에 퍼뜨려서 좋은 기운이 흘려내려 갔으면 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웃음치료’라는 부가 서비스를 받았으니 그 기운은 더 영양가 많은 기운일 것입니다. 각자의 처소에서 행복 바이러스가 되었다가 약발이 떨어지면 또 만나지요. 그렇게 기행이 계속 되어야겠지요.

출처 : 방송대문학기행반
글쓴이 : 박태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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