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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의 일상/길위의 학교

[스크랩] 정지용기행 후기와 사진--첫째 날

by 拏俐♡나리 2010. 4. 14.


 

3개월 만에 뚝섬에 도착하니 변한 게 있었습니다. 서울지역대학 옛 도서관 쪽 건물이 새 건물로 완공되어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젠 왼쪽의 본관이 별관 신세가 될 처지입니다. 사실은 옛 본관건물도 신축건물 덕에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두 건물이 딱 달라붙어 하나가 되었습니다. 새 건물 화장실에 들어가니 클래식 음악도 나오네요. 비데도 설치되어 있을까? 자꾸만 자꾸만 가고 싶어지는 화장실.


잘 지내셨지요? 옛 운전기사님도 1년 만에 뵈었어요. 못 갈 뻔 했는데 일부러 시간을 냈습니다. 이혜신 님이 이런 아늑한 봄날, 봄맞이하러 나들이 가지 않는 것은 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했던 말이 멋진 위안이 됩니다. 거기에 반가운 얼굴들 다시 보는 기쁨이야 말로 표현할 수 없지요. 새로운 친구도 만나고요.


4월 12일자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보니 때마침 제목이 ‘休’입니다. 기행 갔다온 우리들을 위로해주는 글이라 그대로 옮기지요.


“휴(休)


나도 휴식을 취하고 싶다.

내 삶에 재충전의 필요성이 느껴진다.

쫓기듯 살아온 지난 세월에 미안하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며 한나절 여유를 가져보는 것,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보는 것, 어느 것이든 좋겠다. 그래야 생동감이

되살아날 것이고, 그래야 나의 봄을 다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휴(休)! 한자 '休'자의 모습처럼

나도 나무에 기대서서 며칠만이라도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다.


- 홍미숙의《희망이 행복에게》중에서 -



지난번엔 노을이 우리들의 겨울 나들이를 축하해주더니 이번엔 응봉산 개나리꽃 무더기가 우리에게 인사를 합니다. 청담대교에서 보았습니다. 청담대교 밑으로는 지하철 7호선이 다니고 있는 거 아시나요? 그 밑으로 한강이 흐르고요. 그러니까 청담대교는 저희 ‘날으는 스쿨버스’의 활주로가 되어주곤 한다는 말씀!


 

 

우리들의 혜조 대왕이 버스 안 사회를 맡습니다. “버스가 꽉 차 기분이 UP”이라 했습니다. 대왕 아니랄까봐 검은색 구두를 신고 왔네요. 박목월 기행 땐 힐 구두를 신고 왔답니다. 지난번 기행 후기를 보고서 ‘운동화는 신으면 안 되겠구나’ 싶었나 봅니다. 같이 기행 간 지 1년도 더 됐는데, 사회자 모습 오래간만에 보면서 참 반가웠습니다. 말을 얼마나 예쁘게 호소력 있게 하는지. 또 그랬던가요? “기행은 계절마다 다 와 봐야 그 맛을 안다”고. 은근히 다음 기행 홍보를 합니다.

 

 

 

 

현통일 선배의 딸 통통한 다은이. 엄마 품에 안겨 “엷은 졸음에 겨워” 잠을 자고 있네요. 주변 지인이 선배 성을 잘못 알아 이 친구 이름이 어느 날 ‘통다은’이 되었답니다. 그걸 기념해 지금도 현 선배 카페 닉네임이 ‘통다은아빠’입니다. 

 

 

 

 

정낙찬 님. 자작시를 읊고 계십니다. 아직도 소녀적 감수성을 갖고 시와 함께 더불어 살고 계셔 많은 분들의 부러움을 사신 분입니다. 그 여린 마음 늘 영원하시길.


신상영 선배님은 버스 안에서 기행반을 보고 ‘아름다운 조직’이라 표현하셨습니다. 그 ‘아름다운 조직’의 버스 안 앞 풍경을 찍으려고 노무현 대통령까지 들먹였는데 결국은 실패했습니다. 버스가 정차해 있을 때 찍었어야 했는데……다음에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밑으로부터 따지니 우리가 묵을 숙소가 3층짜리 건물이네요. 나무 계단이 주르르 이어져 있는. 짐을 정리하고 1층 너른 발코니에서 작품론과 작가론을 듣습니다. 김미경 님이 정지용의 시 ‘향수’를 자세히 분석해 주십니다. ‘해설피’라는 말이 ‘해질 무렵 붉게 타오르는 저녁 노을’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주 해설피 무렵에 기행을 떠나곤 한 거네요. 


노래방에서만 접한 ‘향수’. 테너 박인수 님이 이 곡을 부르고서 한참 곤욕을 치르셨습니다. 성악가가 대중가요를 불렀다고 해서요. 그래도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을 불러 주셨으니 그까짓 편견쯤이야……

 

 

 

 

새로 알게 된 벗 김선희 님과 윤순옥 님. 술도 같이 마시고, 말도 더듬더듬 놓기도 하고, 청룡열차도 함께 탔습니다. 기행이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자신의 고유분모를 드러내며 서로 배워갔으면 합니다.

 

 

 

 

현통일 선배의 작가론 시간. 꼭 2년 전 조정래 기행 때도 열심히 작가론을 준비해 발표했었더랬지요. 이 양반 버스 안에 있으면 여간 시끄럽지가 않은데 오래간만에 만나니 이 양반 없으면 버스 안이 심심할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다들 열심이시네요. 사진 찍는다는 핑계로 늘 발표 장소 언저리에 있지만 그 재미도 쏠쏠합니다. 진지한 이들의 옆모습 보는 일 말입니다. 그래도 들을 건 듣습니다.

 

 

 


정지용 문학관에 보관되어 있는 시집 <백록담> 초판본. 정지용 시를 집대성해 설명해 놓은 책 <정지용 詩 126편 다시 읽기>(민음사) 머리말을 보면 이 책을 쓰신 권영민 님의 이 시집에 대한 애절한 사연을 접할 수 있습니다. 이 분에게 ‘내 인생의 책 한 권’을 말해보라 하면 단연코 이 시집 초판본일 텐데, 학창시절 청계천 헌책방에서 이 책을 구한 인연이 30년이 지난 후 770페이지나 되는 위 책을 쓰게 되는 삶의 여정으로 진행되었으니 그 애정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겠지요. 이런 고백을 합니다. “정지용 시를 읽는 즐거움, 그것은 바로 그 언어의 유곡을 따라가는 조바심에서 비롯된다.”

 

 

 

 

가톨릭 신자로서의 정지용을 알게 하는 정지용문학관 내 전시관 한 모습입니다. 세례명이 프란치스꼬라고 했던가요. ‘나무’란 시는 이런 구절로 시작하네요.

 

“얼굴이 바로 푸른 하늘을 우러렀기에

발이 항시 검은 흙을 향하기 욕되지 않도다.


곡식알이 거꾸로 떨어져도 싹은 반드시 위로!

어느 모양으로 심기어졌더뇨? 이상스런 나무 나의 몸이여!


권영민 님의 해석을 보죠. “시적 화자가 검은 흙을 밟고(속된 인간 세상에 살고 있지만) 언제나 머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르고 있음”, “곡식알이 땅에 떨어져도 싹이 반드시 하늘을 향하여 위로 돋아나는 것처럼 자신의 몸도 그렇게 되었을 것임.”……

 

 

 


토론회 사회를 보신 문선아 선배님. 왕년에 기행 임원 활동을 왕성하게 하셨답니다. 그땐 기행반 동아리방도 따로 있었고, 그곳에서 기행지 등을 만들곤 했었지요. 첫사랑처럼 ‘첫기행’에 대해서 버스 안에서 고백했지요. 현통일 선배와의 결혼 10주년 축하드립니다.


고향에 대한 발표를 하게 하시는데, 재치있게 최명자 님을 찍습니다. 태백이 고향이라는 명자 님 입에서 나온 그 말, “모든 시냇물은 다 까만 줄 알았다”는 말을 듣고 정말 놀랐습니다. 언젠가 태백으로 여행 가던 길, 사북을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정말 탄광촌에서 볼 수 있는 을씨년스러운 검은색의 풍경을 보고 가슴이 싸아 했습니다. 그렇지만 명자 님이 또 그랬지요. ‘감추고 싶은 거, 지금은 추억이 되네.’

 

 

 

 

한 이불 속 전계명 님, 최명자 님, 이은숙 님. 전계명 님, 졸업하고서 바쁜 일상이 어느 정도 끝난 지금 ‘무위도식’하는 생활의 단면이 환한 얼굴에 씌어 있습니다. 4년 동안 힘들게 일인 삼역 했으니 올해는 그래도 되지요. 누가 저보고 “너 얼굴이 왜 그러니(상했니)?” 그랬습니다. 저도 무위도식해야겠습니다.

 

 

 


전국을 누비며 주업과 부업을 같이 겸하고 계시는 이동근 님. 옷장사와 글쓰기가 그것인데, 역마살 이력이 말씀 속에 무던하게 묻어 있었습니다. 돈과 정착을 포기하고 시공을 초월해서 사신다 했습니다. 전국의 섬만을 돌아다니며 글을 쓰시는 시인(강제윤)도 계십니다. 삶을 그리 선택하셨으니 길 속에서 배운 진리를 많은 이들에게 좋은 글로 전해주시길 소망합니다.

 

 

 


우리 진미자 회장님 웃음 이쁘죠? 누군가 버스 안에서 ‘채송화 같은 분’이라 했습니다. 기행 때문에 노심초사하셨는데 이젠 잠시 쉬시기를. 소싯적 얼마나 개구쟁이였을까 싶은, 뒤쪽 손 주인.

 

 

 


꼭 20년 전 이 도시에 같은 목적으로 오셨던 김성곤 대 선배님. 그 느낌이 어떨까 싶습니다. 캠프파이어 때 그 감회를 내놓으십니다. 같은 동기이신 안면희 선배님의 말씀대로 같이 50주년 기념 기행까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촛불 하나에 10년, 맛있는 떡 케잌. 그 케잌을 나눈 48명.

 

 

 

 

5번 방. 시인의 시에서 따왔는데 정말 멋들어진 아이디어입니다.

 

 

 

 

 

늦은 새벽 시간. 모닥불은 조금씩 잦아드는데, 어른들보다 더 잠이 없는 아이들과 미니 모닥불을 만들었습니다. 재원이, 영주, 민선이 등등……불이 꺼질 새라 자잘한 불쏘시개들을 주워다 옵니다. 그리고 만든 별. 하늘이 흐려 별이 보이지 않아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네요.


모닥불이 있어 더욱 좋은 기행 첫날밤이었습니다.



출처 : 방송대문학기행반
글쓴이 : 박태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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