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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의 수업/시 배움 자료

[스크랩] [제 8강의 ] 여행 연습 2 (가을이 오면 ) /박석구

by 拏俐♡나리 2010. 9. 28.

3. 여행 연습. 2



잠시 쉬어 갑시다. 소처럼 언덕에 앉아 하늘도 보고, 땅도 보며 지나온 길을 되짚어 봅시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되돌아가 다시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겠지요? 어차피 시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 인식된 대상에

대한 느낌과 생각이 가슴에서 녹아 발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루하면, 술 한 잔 마시는 것도 좋습니다.

쉬었습니까? 그럼, 다시 걸음을 옮겨야겠지요?


* 밤나무

해마다 밤나무에 밤이 주렁주렁 열립니다. 사람들이 그 밤을 모두 다 따 갑니다. 그래도 밤나무는 해마다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밤나무를 사람에 빗대어 보면, 무엇과 같습니까?


영락없이 바보지요. 그렇다면, 그 밤을 딸 때, 당신의 기분은 어땠습니까? 즐거웠지요? 마치 고향 동네에

꼭 하나씩 있는 바보를 놀릴 때처럼. 정리해 봅시다.


사람들이 모두 다 따 가는데도, 해마다 열매를 맺는 밤나무는 바보다. 그래서 우리들은 밤을 딸 때마다 즐

거웠다. 


다듬어서 연과 행을 구분해 봅시다.


모두 다, 따 가는데도

해마다 열매를 맺는

밤나무는 바보.


그래서 우리들은 즐거웠다.


우리 모두, 밤나무처럼 하루에 한 번씩만 바보가 됩시다.

표현기교는 의인법, 표현방법은 지난날을 회고하는 독백적 진술입니다.


* 가을이 오면

가을이 왔습니다. 당신은 산 속을 걷고 있습니다. 향긋한 내음새가 코끝에 묻어 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몸에서는 내음새가 납니까? 냄새가 납니까?


답이 나왔으면 산에게 묻는 형식으로 정리해 봅시다.


산아, 가을이 오며는 왜, 네 몸에서는 내음새가 나고, 내 몸에서는 냄새가 날까?


행을 골라 다듬어 봅시다.


산아, 가을이 오며는

왜, 네 몸에서는

내음새가 나고

내 몸에서는

냄새가 날까.


왜, 당신의 몸에서 냄새가 날까요? 그것은 삶의 때가 묻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미움과 사랑이 뒤범벅이 되

어 만들어 내는 때.


* 눈. 2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눈이 펑펑 내렸으면 좋겠지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답이 생각나지 않았으면, 눈을 감으십시오. 당신은 지금부터 최면술사입니다. 당신이 당신에게 최면을 거는

겁니다. 


한 폭의 눈 내리는 풍경을 그려봅시다. 어린 시절의 추억 속의 풍경을, 아니면 어느 영화에서 본 풍경을 그

려도 좋습니다. 그 그림 속을 끝없이 걸어가십시오. 눈이 펑펑 내렸으면 좋겠지요? 이유가 무엇입니까? 최

면에서 빠져 나와 당신에게 고백해 보십시오.


눈이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 아무 흔적도 없이 걸어 보게.


'눈이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에서 '좋겠다'를 생략해도 그 의미는 변하지 않지요? 이것이 생략법. 시가 은

은한 여운을 가지게 하는 표현기교입니다.


눈이 펑펑 내렸으면, 아무 흔적 없이 걸어 보게.


'아무 흔적 없이'라는 말은 추상적인 말. 구체화하여 봅시다. 눈밭을 거닐면 뭐가 남습니까? 발자국이지요?

그렇다면, '발자국 없이'로 바꾸면 좋겠지요?


눈이 펑펑 내렸으면. 발자국 없이 걸어 보게.


행을 나누어 정리해 봅시다.


눈이 펑펑

내렸으면

발자국 없이

걸어 보게.


그런데 앞에서 정리한 내용 중, '아무 흔적 없이'를 '자유롭게'로 바꾸어 본다면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

까요? 


눈이 펑펑 내렸으면 자유롭게 걸어 보게.


'자유'라는 말은 구속받지 않는 것. 그렇다면, 당신의 걸음을 구속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길. 길을 없애면

되겠군요? 다시 묻습니다. 당신은 어떤 길을 걷고 싶습니까? 길이 없는 길. 눈이 펑펑 내리면 길은 저절로

없어지겠지요? 이젠 당신은 '길 없는 길'을 걸어 자유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눈이 펑펑

내렸으면

길 없는 길을

걸어 보게.


둘 중, 당신의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십시오. 그리고 길도 없고 발자국도 남지 않는 길을 끝없이 걸어가

십시오. 당신의 마음이 하얗게 물이 들 때까지.


펑펑은 의태어, 사물의 모습을 흉내낸 말입니다. 표현방법은 당신이 소망을 드러낸 독백적 진술입니다.


* 부처님 오신 날

오늘은 부처님이 오신 날입니다.


정말, 부처님이 당신에게 오셨습니까?


다시 묻습니다. 정말, 부처님이 당신에게 오셨습니까? 아니라면, 당신의 부처님이 오신 날은 언제 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너무 오래 생각하면 답이 달아납니다.


질문을 바꾸어 봅시다. 당신이 가장 축복을 받은 날이 언제입니까? 그 날이 부처님이 오신 날 아닐까요? 다

시 묻습니다. 부처님이 오신 날이 언제입니까? 당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날. 그렇습니다. 그럼, 당신은 어

떤 모습으로 이 세상에 왔습니까? 알몸으로 울면서.


지금부터는 당신이 부처님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언제가 부처님이 오신 날입니까? 질문을 바꿔 보면, 당신

의 생일날이 언제입니까?

대상인식이 끝났으면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오늘은 일월 칠일 나의 생일날인데, 오늘이 바로 이 세상에 부처님이 알몸으로 울면서 오신 날이다.


간략하게 줄여서 다듬어 봅시다.


오늘은 일월 칠일

나의 생일날

이 세상에 부처님이

울면서 오신 날.


퇴고해 볼까요? 3행의 '이 세상에 부처님이'를 '부처님이 알몸으로'로 고치면 어떨까요?


오늘은 일월 칠일

나의 생일날

부처님이 알몸으로

울면서 오신 날.


왜. 알몸으로 왔을까요? 왜, 울면서 왔을까요? 우리가 평생을 두고 가슴에서 녹여 봐야 하는 질문. 이 질문

이 녹아 당신의 가슴을 적시는 날, 당신은 당신의 부처님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요?

표현방법은 독백적 진술.


* 돼지

돼지가 꿀꿀거립니다. 참새가 짹짹거립니다.


저놈들은 지금, 행복할까요? 불행할까요? 아니,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 불행합니까?


인식했으면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당신이 불행하다면


①돼지는 꿀꿀거리고, 참새는 짹짹거린다. 아마, 저놈들은 저렇게 행복할 거야.


당신이 행복하다면


②돼지는 꿀꿀거리고, 참새는 짹짹거린다. 아마, 저놈들도 저렇게 행복할 거야.


①의 내용을 다듬어서 시로 바꾸면


돼지는 꿀꿀

참새는 짹짹

저놈들은 저렇게

행복할 거야.


②의 내용을 시로 바꾸면


돼지는 꿀꿀

참새는 짹짹

저놈들도 저렇게

행복할 거야.


두 시는 같은 시어에 조사의 사용이 다릅니다. ①의 '저놈들은'에서의 '은'과 ②의 '저놈들도'에서의 '도'.

여기에서 유의할 점은 조사 하나의 차이가 시의 분위기를 전혀 다르게 만든다는 겁니다. ①은 서글픈 마음

으로 대상을 자신과 대조하여 본 시가 되었고, ②는 즐거운 마음으로 대상을 자신과 같은 입장으로 비교해

본 시가 되었습니다. 시어의 사용은 이와 같이 시의 분위기를 전혀 다르게 바꾸어 놓습니다. 표현방법은 두

시 모두, 1, 2행은 서경적 묘사, 3, 4행은 해석적 진술입니다.


②의 시와 같이 우리, 차라리 돼지와 참새처럼 행복하길 빌어 봅시다. 그러기 위해, 그들이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시 한 편 소개하겠습니다.


배추벌레는 나비를 꿈꾸지 않아도

나비가 되고


씨앗은 꽃을 꿈꾸지 않아도

꽃이 된단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꿈을 꾸어도

어떤 것도 되지 못했지.


그것은 우리가 오늘을 살지 않고

내일만을 살기 때문이란다.

- 배추벌레는 -


답이 됐습니까? 삶은 쌓은 만큼 무너지는 것. 어제를 무너뜨려야 오늘이 쌓입니다. 그러나 오늘을 무너뜨리

면 내일이 쌓이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이 무너지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오늘입니다. 오

늘을 진실하게 살아야 또 하나의 오늘이 아름답게 눈을 뜨는 것입니다.


출처 : 문학의 만남
글쓴이 : 글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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