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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의 수업/시 배움 자료

[스크랩] [제 6강의] 여행연습 1 (개똥참외 ) /박석구

by 拏俐♡나리 2010. 9. 16.

[제 6강의]

여행연습 1 (개똥참외 )

 

박석구

 

*축구공
기분 좋게 축구공을 내지르다가 그만 발을 삐끗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축구공을 찼습니까? 축구공이 당신을 찼습니까?

당신에게 묻지 말고 축구공에게 물어 보십시오. 직관은 생각의 전환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축구공을 찬 것은 당신이지요? 그런데 발을 삔 것은 축구공이 아니라 당신입니다. 자, 당신이 축구공을 찼습니까?

축구공이 당신을 찼습니까? 축구공에게 물어 보십시오? 대답을 들었으면, 축구공의 대답을 섞어 당신의 생각을

정리해 봅시다.

내가 축구공을 저질렀는데, 축구공에게 물어 보니, 제가 나를 내질렀다고 말한다.

조금만 다듬으면 시가 됩니다.

내가 저를 내질렀는데
축구공에게 물어 보니
제가 나를 내질렀단다.

다시 한 번 축구공을 내질러 보십시오. 그리고 축구공이 무어라고 하는지 다시 한 번 들어보십시오. 표현기교는

의인법, 표현방법은 독백적 진술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가끔가다 이렇게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가 있겠지요? 당신이 당신을 볼 수 있으니까.

* 개똥참외
길을 가다가 풀숲에 개똥참외가 열렸습니다.

당신은 지금, 개똥참외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눈을 감아 봅시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 하나 떠오르지요? 당신만 발견한 줄 알고 익기만 기다렸는데,

어느 날 가서 보니, 누군가가 따먹어 버린 개똥참외, 생각나지 않습니까?


그리고 동네에 예쁜 꼬마 아가씨 하나가 있어, 저놈이 크면 자기의 각시 삼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다른 마을로 시집을 가 버린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습니까?


상상은 추억을 먹고삽니다. 꼬마 아가씨와 개똥참외를 함께 생각하면서 상상해 봅시다. 참외는 아직 익지 않았지요?

개똥참외는 언제나 미완으로 남아 있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개똥참외에게 뭐라고 하겠습니까?

꼬마 아가씨에게 뭐라고 하겠습니까? 간단히 한 마디만 해 보십시오. 꼬마 아가씨에게 속삭이듯 개똥참외에게

말해 보십시오.

익기만 해라. 아무도 몰래 찾아 올 테니.

매듭만 만들면 곧바로 시가 됩니다.

익기만 해라
아무도 몰래
찾아 올 테니.

익을 만하여 찾아가면, 그 개똥참외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아마 없겠지요.

다른 사람도 당신처럼 맡아 놓았을 테니까. 그래서 개똥참외는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남아 우리의 가슴 저 쪽에서

지금도 고향처럼 익어가겠지요?


표현기교는 의인법, 표현방법은 권유적 진술. 당부하거나 동조, 참여, 각성을 청하는 진술입니다.

* 산
산 속의 산, 그 산 속의 산입니다.

자, 여기에 서서, 저 멀리 보이는 산을 외쳐 부르면, 산은 어떤 메아리를 울려 줄까요?

당신에게 묻지 말고 산에게 물어 보십시오. 질문을 그대로 다듬어도 시가 될 수 있습니다. 메아리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시.
그럼, 산에게 물어 보십시오.

산아, 이만큼 멀리 서서, 너를 부르면, 어떤 메아리로 대답해 주겠니?

조금만 다듬어 매듭만 만들면 시가 됩니다.

산아, 이만큼
멀리 서서
너를 부르면
어떤 메아리로
대답해 줄래.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가치,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진실.

가끔은 이렇게 산과 어울려 노는 것은 진실을 배우는 것.

* 조개
그림입니다. 바다 속의 모래밭에 탐스런 조개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저 조개에 당신의 손길이 닿으면 어떻게 될까요?

조개 속에는 무엇이 자라고 있습니까? 진주. 그렇다면, 조개에게 꼭 한 마디 물어 볼 말이 있지요?

물어 보십시오, 당신의 애인에게 묻듯 은근하게. 남들이 눈치를 채면 안될 테니까?

내 손길이 닿으면 네 몸 속에서는 어떤 진주가 여물어 갈까.

행을 나누면 곧바로 시가 될 수 있습니다.

내 손길이 닿으면
네 몸 속에서는
어떤 진주가 여물어 갈까?

'진주',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요? '아름답게 여문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당신의 가슴속에 별빛이 밝아 올 것입니다. 눈을 감을수록 더욱 밝아오는 별빛.

그러나 당신만이 볼 수 있는 별빛.
표현기교는 대답을 숨긴 문답법, 표현방법은 해석적 진술.

* 산길
당신은 지금, 산 속의 외진 길을 걷고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돌아오고 있습니까, 돌아가고 있습니까?

당신의 가슴에 대고 당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당신에게 물었다면, '지금, 나는 돌아오고 있는가,

돌아가고 있는가?'로 바꿔야 되겠지요?


배경은 '산 속의 외진 길', 인물은 '나', 사건은 '돌아오고 있는가, 돌아가고 있는가'입니다. 정리해 봅시다.

조금만 손질하여 옮기면 곧바로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산 속의 외진 길
나는 지금,
돌아오고 있는가.
돌아가고 있는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것이 삶에 있어서의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합니다.

살아온 만큼은 죽어 가야 하는 우리는 지금, 어디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표현기교는 문답법, 표현방법은 마음 속의 의문을 털어놓은 독백적 진술.

* 풀잎
갈아엎은 흙더미 속에 이름 모를 풀잎이 돋아났습니다.

풀잎이 뭐라고 말합니까?

풀잎에 귀를 기울려 보십시오. 들리지 않으면 당신이 풀잎이 되어 속삭여 보십시오. 자, 풀잎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할 말이 생각났으면 정리해 봅시다.

갈아엎은 흙더미 속에 풀잎 하나가 돋아났다. 다가가 가만히 귀를 기울리니 봄이 온다고 말한다.

'갈아엎은 흙더미'는 배경, '풀잎'은 인물, '봄이 왔다'를 사건으로 하여 다시 한 번 정리해 볼까요?

이것이 재정리. 정리는 많이 할수록 좋다고 말했습니다.

갈아엎은 흙더미 속의 풀잎 하나가 봄이 온다고 말한다.

줄일 수 있는 말을 줄여 시의 형식에 맞춰 봅시다. 그러나 다 줄이면 안됩니다. 벌거숭이가 되면, 보기 흉할 테니까요.

진정한 아름다움은 감출 것은 감추고, 보일 것은 보여주는 것.

갈아엎은 흙더미 속
돋아난 풀잎 하나

봄이 온데요.

'갈아엎은'과 '돋아난'을 빼면 옷을 다 벗긴 형태가 됩니다. 좀 흉할 것 같지요?

1연은 그대로 본 것을 묘사한 것이고, 2연은 상상하여 본 것을 진술한 것입니다.

 

출처 : 문학의 만남
글쓴이 : 글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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