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한 대
초 한대-
내 방에 품긴 향내를 맡는다.
광명의 제물이 무너지기전
나는 깨끗한 제물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같은 그의 몸
그의 생명인 심지까지
백옥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라 버린다
그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뀡이 도망하듯이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품긴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1934. 12. 24>
이 시는 자기 몸을 불살라 어둠을 쫓아내는 촛불의 이미지에 그리스도를 접목시켜 詩化한 작품이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한일서 2 : 2),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브리서 10 : 14)는 성경 말씀처럼 염소의 갈비벼같은 육체를 입고 인류를 구원키 위해 자기 생명을 속죄양으로 제단에 바친 그리스도, 눈물과 피의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에 취해 시인은 지금 그의 위대한 생애의 향내를 맛보고 있는 것이다.
성탄 전야에 걸맞게 촛불과 그리스도를 접목시키는 詩想은 탁월하나 여전히 그것을 유기적이며 자연스럽게 구성하는데는 실패하고 있다.
내일은 없다
- 어린 마음이 물은
내일 내일 하기에
물었더니
밤을 자고 동틀 때
내일이라고
새날을 찾던 나는
잠을 자고 돌보니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무리여! 동무여!
내일은 없나니
<1934. 12. 24>
이 시는 童詩的 技法이 그대로 남아 있는 작품으로, 인간은 時間的 存在, 有限한 存在, 곧 '오늘'이라는 새장에 갇혀 사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말해준다. 동시에 오늘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작품으로 어떤 일도 내일 내일 미루다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기독교적으로 적용해 보면,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때는 오늘이다. '오늘이 구원받을 만한 때요'하는 聖句처럼 내일 내일 하다가 오늘을 놓치는 사람에게는 결국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 세 작품은 모두 1934년 성탄 전야에 씌어진 시로, 윤동주는 이제 童詩 創作 만이 아니라 더불어 본격적인 시창작의 세계로 접어든다는 뜻에서 작품 말미에 詩作 날짜를 적어 넣고 있다. 아직 습작시의 티를 벗어나지 못해 완성도나 세련미는 떨어지지만, 앞으로의 윤동주의 詩世界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를 짐작케하는 작품들이다.
윤동주는 이듬해 1월 18일에 詩 [거리에서]를 창작했는데, 그 분위기가 한 달전의 작품들과는 사뭇 판이하다.
거리에서
달밤의 거리에서
狂風이 휘날리는
北國의 거리
都市의 眞珠
電燈밑을 헤엄치는
조그만 人魚 나,
달과 전등에 비쳐
한몸에 둘셋의 그림자
커졌다 작아졌다.
괴롬의 거리
灰色빛 밤거리를
걷고 있는 이 마음
旋風이 일고 있네
외로우면서도
한갈피 두갈피
피어나는 마음의 그림자,
푸른 空想이
높아졌다 낮아졌다.
<1935. 1. 18>
이 작품은 거리를 노래하면서도 시인 자신의 내면 세계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하는 본격적인 '나'에 관한 시로, 그 시적 구성이 전, 후반부 선경후정이다. 거기에 1, 2연 모두 9행으로 배열하고, '달밤의 거리 : 괴롬의 거리', '커졌다 작아졌다 : 높아졌다 낮아졌다' 등 대칭 겸 수미상관의 기법을 구사하여 형식미를 살리는 등 한달 전의 시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시적 기교가 세련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은 지금 바람부는 겨울의 밤거리에 거닐고 있다. 달이 떳다고 하지만 광풍에 가까울 정도의 세찬 바람이 북국의 거리를 휘젖고 있다. 시인은 도시의 진주라고 말할 수 있는 전등밑을 조그만 인어가 되어 헤엄치고 있다. 순간 달과 전등불에 자신의 그림자 두세 개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것을 본다. 여기까지가 시적 배경이다. 후반부 접어들면서는 내적심리를 토로하고 있다. 시인이 걷고 있는 거리는 회색빛 괴롬의 거리다. 밖은 광풍이 불고 있고 안에서는 선풍이 일고 있다. 아마 시인은 진로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다. 평양에 있는 숭실 중학에 가고 싶은데 집안 어른들이 쉽게 허락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로문제가 얼마나 시인을 짓눌렀는가는 그가 추운 밤바람을 맞으며 헤메고 있는 데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평양에 갈 생각을 하면 부푼 가슴에 푸른 공상이 높았다 낮아졌다 한다. 그러나 가게 될지 어떨지 몰라 마음속의 그림자는 한 갈피 두 갈피 피어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암울한 분위기와 어둠에 마주선 고뇌의 목소리인데, 그것은 시인의 원형체험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명동촌이 깨어질 때 받은 상처와 용정에서의 불우한 삶, 그리고 무엇보다 불투명한 진로문제가 시인으로 하여금 갈등과 방황의 싹을 틔우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7에서 계속됩니다)
출처 :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
글쓴이 : 리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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