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
잎이 다 진 숲 속,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낡은 기와집 두어 채가 앉아 있습니다.
낡은 기와집이 무엇처럼 생겼습니까?
먼 옛날의 외갓집.
외갓집이라면, 맨 처음 생각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외할머니.
그렇다면 낡은 기와집은 누구처럼 그 자리에 앉아 있습니까?
외할머니처럼.
위의 내용을 다듬어서 정리해 봅시다.
잎이 다 진 외딴 숲 속에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낡은 기와집 두어 채가 언제나 그 자리에 외할머니처
럼 앉아 있습니다.
'잎이 다 진'과 '앙상한 나무'는 의미 중복으로 봐야겠지요? 둘 중에 하나를 생략해야겠지요? 문맥상
'앙상한 나무'를 생략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잎이 다 진 외딴 숲 속에 낡은 기와집 두어 채가 언제나 그 자리에 외할머니처럼 앉아 있다.
다시 한 번 다듬어서 행과 연만 구분하면 시가 됩니다.
잎이 다 진 외딴 숲 속
낡은 기와집 두어 채
언제나 그 자리에
외할머니처럼 앉아 있다.
시는 이렇게 쓰이는 것입니다.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어디서나 가슴 안겨 오는 풍경이
있다면 화가가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듯 당신도 그것을 한 편의 시로 옮길 수 있습니다.
표현기교는 직유법, 표현방법은 서경적 묘사, 눈이 보이는 모습을 그림을 그리듯 옮겨 놓은 것입니다.
* 바람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을 떠났습니다. 그 사람이 비워 놓은 자리는 점점 넓어만 갑니다.
지금, 당신의 심정은 어떻습니까?
당신이 느끼고 생각한 것을 옮겨 보십시오.
그 사람이 떠난 후, 나는 울고 싶었다. 이것저것 모두 다 흩어 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어디론지 아무
도 모르는 곳으로 무작정 떠나고 싶었다.
이것은 당신의 마음을 그대로 쏟아 놓은 것입니다. 될 수 있으면 간단하게 다듬어서 시를 만들어 봅시
다.
.
울고 싶었다.
모두 흩어 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어디론지
무작정 떠나고 싶었다.
이 시는 제목만 내용에 걸맞게 붙이면 멋진 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제목을 붙여 봅시다.
이 시의 내용은 무엇의 속성과 비슷할까요? 울고 싶을 때 울고, 흩어 버리고 싶을 때 흩어 버리고, 떠
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것.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람. 좋습니다. 제목은 '바람'입니다. 표현기교
는 열거법, 표현방법은 당신의 마음을 고백한 독백적 진술.
* 불꽃놀이
만약, 당신이 죽어 장례를 치른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매장, 화장 풍장, 수장, 조장 중, 어느 것이 더 좋을까요? 매장은 흙이 되는 것. 화장은 불꽃이 되는
것. 풍장은 바람이 되는 것. 수장은 물이 되는 것. 조장은 새가 되는 것.
이 세상을 떠나는 당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당신은 살아온 만큼 죽어왔습니다. 지금은 모든 것
다 두고 떠나는 시간입니다. 그렇게도 아끼던 몸을 버려야 하는 시간입니다. 어떻게 당신의 몸을 버리
겠습니까? 매장, 화장, 풍장, 수장, 조장 중 어느 것을 고르겠습니까? 화장.
화장입니까?
화장이라면 왜, 그렇습니까?
한 번만이라도 불처럼 타고 싶어서.
이렇게 질문과 답을 고리처럼 이어가면 하나의 시상이 떠오릅니다. 여기까지가 인식하기. 그럼, 아들
에게 유언을 한 번 해 보십시오. 고칠 것은 고치고, 바꿀 것은 바꿔서 멋지게.
나, 죽으면 내 몸에 불을 붙여 불꽃놀이를 하여 다오. 한 번만이라도 불처럼 타고 싶구나.
'화장'을 '불꽃놀이'에 빗대었습니다. 멋진 상상이지요? 시로 다듬어 봅시다.
나, 죽으면
내 몸에 불을 붙여
불꽃놀이를 하라.
한 번만이라도
불처럼 타고 싶구나.
마음에 들지 않지요?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갈고 닦으면 좋은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직관은 순간
적이지만 시를 다듬는 일은 많은 시간이 걸릴수록 좋습니다. 쓰고, 지우고, 고치고, 다시 쓰노라면 시
를 쓰는 방법이 익숙해져 퇴고가 쉽게 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시가 완성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퇴고 과정에서 가장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동어 반복이나 의미 중복을 회피하는 것입
니다. 의도적인 반복이 아니라면 동어 반복이나 의미 중복은 독자를 지루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불꽃놀이를 하라'와 '불처럼 타고 싶구나'는 동어 반복으로 봐야 하겠지요? 그럼 둘 중에 하나를 생
략하거나 바꿔야겠지요? 그러나 문맥상 생략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뒤의 '불처럼 타
고 싶구나'를 다른 시어로 바꿔 봅시다. 이 말은 '세상을 밝히고 싶다'는 말이 아닐까요? 세상을 밝히
려면 '빛'이 되어야겠지요? 그렇다면 '세상의 빛이 되고 싶구나'로 바꾸면 어떨까요?
나. 죽으면
내 몸에 불을 붙여
불꽃놀이를 하라.
한번만이라도
세상의 빛이 되고 싶구나.
어떻습니까? 좋은 유언이 되지 않겠습니까? 온통 무덤의 천국이 되어 가는 이 세상에 빛이 되는 말씀
이 아닙니까?
갑자기 죽음 이야기를 해서 미안합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가장 가까운 친구. 삶 속에서 죽음을 볼
수 있어야 참된 삶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참된 삶과 값진 삶, 이 둘 중에 당신은 어떤 삶을 선택하
겠습니까? 참된 삶은 가치 이전의 삶이고, 값진 삶은 가치 이후의 삶입니다. 표현기교는 명령법, 표현
방법은 권유적 진술.
* 산
이른 아침 산 속을 걷고 있습니다. 풀잎에 맺힌 이슬이 눈을 반짝입니다. 이름 모를 꽃들이 여기 저기
피어 있습니다. 산모퉁이를 돌아드니, 피 토하듯 피어 있는 엉겅퀴꽃이 가슴에 찍혀 옵니다.
자, 이젠 상상의 세계를 펼쳐 봅시다. 상상의 뇌관은 질문이라 했지요? 그럼, 물어 봅시다, 당신이 당
신에게.
'저 맑은 이슬 속을 보면 무엇이 있을까?'
'한 송이의 엉겅퀴꽃'
'꽃이 있다면 무엇이 날아올까?'
'나비 한 마리'
'그들은 그 속에서 무엇을 할까?'
'사랑.'
'그러면 이슬은 어떻게 될까?'
'강물로 굴러 떨어진다.'
'그렇다면 엉겅퀴꽃과 나비는 어떻게 될까?'
'그것들도 강물 속으로 굴러 떨어진다.'
내용 간추려 정리해 봅시다.
풀잎에 맺힌 이슬 속에서 엉겅퀴 한 송이와 나비 한 마리가 사랑을 하다가 강물 속으로 굴러 떨어졌
다.
다시 한 번 다듬어 봅시다. 이것이 재정리. 재정리를 많이 할수록 시는 좋아집니다.
'사랑하다가'를 '별을 따다가'로 바꾸면 어떨까요?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는 속담을 생각하면 금방
이해가 되지요? 보다 구체화되었지요? '굴러 떨어졌다'의 주체가 '이슬'이 아니라 '엉겅퀴꽃'과 '나비
'이니까 '빠져 버렸다'로 고치는 것이 알맞겠지요?
정리해 봅시다.
풀잎에 맺힌 이슬 속에서 엉겅퀴 꽃 한 송이와 나비 한 마리가 별을 따다가 강물에 빠져 버렸습니다.
다듬어서 행과 연을 구분해 봅시다.
풀잎에 맺힌
이슬 속
엉겅퀴 꽃 하나
나비 한 마리
별을 따다
강물에
빠져 버렸다.
표현방법은 묘사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마음속에 그려진 아련한 풍경. 이것이 심상적 묘사입니다.
* 섬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까치가 울었습니다.
당신은 까치 소리를 듣겠습니까, 듣지 않겠습니까?
까치는 손님이 올 것을 미리 알려 주는 새. 당신은 지금, 기다리는 사람이 없지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 버렸으니까. 그렇다면, 까치 소리를 듣고 싶지 않겠지요?
다시 한 번 물어 봅시다.
오늘 아침 까치가 울었습니다. 당신은 까치 소리를 듣겠습니까, 듣지 않겠습니까?
듣지 않는다.
왜, 듣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이 떠나 버려서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니까.
당신의 애인에게 고백하는 형식으로 정리해야겠지요?
오늘 아침 까치가 울었습니다. 나, 그 소리 듣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떠나 버렸는데 누구를 기다리며
살겠습니까?
다듬어서 틀을 짜 봅시다.
오늘 아침, 까치가 울었습니다.
나, 그 소리 듣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떠나 버렸는데
누구를 기다리며 살겠습니까.
2연의 '당신이 떠나 버렸는데'를 구체화하여 봅시다. 당신이 떠나 서정적 자아인 '나'는 어떻게 되었
습니까? ` 외로움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구체화한다면 무엇이 좋을까요? 섬. 정리하면 '당신이 떠나
섬이 되었는데'.
1연이 높임말을 사용했으니까 어조를 고르기 위해 '당신이 계시지 않아 섬이 되었는데'로 다시 바꾸어
야겠지요?
오늘 아침 , 까치가 울었습니다.
나, 그 소리 듣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계시지 않아 섬이 되었는데
누구를 기다리며 살겠습니까.
- 섬. 29 -
들리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는 역설, 이 속에 간곡한 사랑의 고백이 숨겨 있습니다. 떠난 임을 잊지 못
하는 마음. 그래서 사랑은 병이면서 약. 아, 사랑이여, 너는 우리의 희망, 우리의 절망. 그래도 우리
는 희망과 절망을 반죽하여 사랑을 빚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삶이니까.
표현방법은 독백적 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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