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죽은 사물이 깨어나는 언어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은 노총각이었습니다.
돌을 주워다가 조각을 하는데, 그 사람의 성격 중의 하나는 여성 혐오증에 걸려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를 아주 싫어했는데, 왜냐하면 이상적인 여자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세계 속에만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던 그는,
어느 날 돌을 주워다가 스스로의 마음 속에 이상형으로 생각해오던 여성을 조각했지요.
자기가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상을 예쁘게 조각해서 앉혀 놓고,
매일 아침에, 잠자리에 들 때 만져주고 뽀뽀하면서 사랑을 했습니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에는 제우스신의 축제일이 있었습니다.
이 날에는 누구나 최고의 신인 제우스를 향해 소원을 비는 기도를 하곤 했는데, 피그말리온 역시 소원을 빌었습니다.
'제가 만든 조각이 정말로 사람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진짜 여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올렸지요.
그랬는데 그걸 들은 신이 피그말리온의 정성과 진심에 감동하여 정말 그렇게 해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피그말리온은 평소에 하던 대로 자신이 빚은 여인상을 만져주고 뽀뽀도 해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안다 보니까 전에 없이 보들보들한 걸 느끼고 깜짝 놀랐습니다.
피그말리온이 뽀뽀를 하자 돌로 만들어져 딱딱하던 입술은 점점 말랑말랑해지고 빨개져 왔고,
허벅지를 눌러보자 사람의 살처럼 들어갔다 이내 튕겨지듯 나왔습니다.
돌로 빚어진 여인상이 정말 아름다운 여자로 변했던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렇듯 간절한 꿈이 있으면,
여러분의 언어의 살은 퐁퐁 들어갔다 나왔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살아 있는 언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물, 즉 대상에 닿을 것인가 하는 얘기를 할 때,
피그말리온이 빚은 여인상의 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죽어 있는 사물을 살아 있는 감각을 지닌 생물로 변하게 하는 언어를 쓸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합니다.
모름지기 시인이라면 피그말리온의 살을 시 속에 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시적 변형을 이야기합니다. 시에서의 어떤 대상은 그것이 곧바로 언어로 되는 게 아니지요.
언어로 변형이 되어 시 속에 들어왔다가, 하나의 언어가 되어서 원고지 위에 앉는 것입니다.
슬로우 비디오로 찍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먼저 우리가 대상을 본다.
대상 가운데의 그 무엇이 시인의 눈 속으로 들어온다. 이것이 시인의 언어로써 변형이 되는 거지요.
바로 그러한 변형을 여러분들이 분리시키는데,
그러한 변형은 피그말리온의 살과 같은 간절성을 가지고 이루어질 때 정말 남을 감동시킬 수 있는 언어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감동하지 않는 언어는 남도 감동시킬 수 없다. 이게 원칙입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도
"이게 과연 시입니까? 내가 신춘문예에 내도 될까요?" 하는 의문을 품고 저를 찾아오는 친구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부분적인 기법을 지적하기보다 먼저 "니가 감동했느냐?" 하고 짧게 질문을 던집니다.
자기가 감동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남이 감동해 주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니가 감동했으면 남도 감동할 것이다."라고 말해주면서 시고를 돌려줍니다.
'감동할 수 있다, 감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피그말리온의 간절함이 여러분 속에 들어왔다가 언어화되어서 나갔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시나 산문들을 보면 간절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이 간절성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필연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산문보다 특히 시의 언어는 정말 필연성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은 바로 피그말리온과 같은 간절성,
즉 딱딱한 돌인 대상에다가 말랑말랑한 살을 부여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할 때 획득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필연의 언어를 써라, 진정성의 언어를 쓰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늘 간절함에 차 있으면 사실 전율도 잘 올 수 있고,
탄성도 저절로 터져 나올 수 있고, 언어의 변형도 잘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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