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속도를 늦추면 더 많은 것이 보인다
무엇을 보았는가? 속도가 느릴수록 잘 보인다.
우리는 같은 사물일지라도 빨리 달리면 그만큼 휙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제대로 보기 어렵습니다.
차를 운전하면서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는 '시를 쓰려면 차를 타지 말아야겠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헬리콥터를 이용하여 아프리카의 사막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 것을 비디오로 본 적이 있습니다.
헬리콥터가 처음에는 높이 날다가 점점 고도를 낮추니까 더 많은 동물들이 헬리콥터의 시각 안에 들어오고,
더 고도를 낮추니까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아예 걸어가면서 사진을 찍으니까 그 속에 있는 아주 작은 것들이 막 보이더군요.
그런데 현대시는 어떤 것을 써야 되겠습니까?
큰 것만 써야 되겠습니까?
빨리 달리는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작은 것들에 주목해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갈수록 왜소해져 가고 있습니다.
유전공학에서는 멋있는 사람들만 복제의 대상이 되고, 멋없는 사람들은 점점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부모님한테서 태어날 때만 제 의지대로 선택을 하지 못했고, 죽을 때는 자기의 선택대로 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죽을 때도 자기의 선택대로 죽을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불쌍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작은 것들을 시의 눈으로 읽어야 되는데, 우리는 지금 너무 빨리 달리고만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문학하는 사람들,
종이 위에 무엇인가를 써가며 오늘을 주목하는 사람들이라면
좀 천천히 가면서 작은 것들을 돌아보고 작은 것들을 노래로 담아야 될 것입니다.
나는 그것이 모름지기 시인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문단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허무집」을 상재한 적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허무 수첩」이라는 에세이집도 내고 했는데,
아직도 허무를 붙잡고 앉아 있느냐는 식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로서는 일생을 두고도 모자라는 테마가 허무인 것 같습니다.
허무는 또 하나의 생명이지요. 바로 무수한 작은 것들의 생명길, 그것이 허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종이 위에 그 무엇인가를 뱉어내는 사람들이라면 그 허무를 쓰다듬지 않으면 무얼 쓰다듬겠습니까?
'나리의 수업 > 시 배움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시창작론] 시창작 강의 / 한국교육학술정보원 - 작가 홍흥기 (0) | 2010.10.08 |
---|---|
[스크랩] 좋은 시인이 되는길 - 강은교 (4) 내 곁의 한 사람의 울음을 들을 수 있다면 (0) | 2010.10.06 |
[스크랩] 좋은 시인이 되는 길 - 강은교 (2) 죽은 사물이 깨어나는 언어를 (0) | 2010.10.04 |
[스크랩] 좋은 시인이 되는 길 - 강은교 (1)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0) | 2010.10.01 |
[스크랩] [제 11강의 ] 여행 연습 2 ( 숲속 , 바람 ) / 박석구 (0) | 2010.10.01 |